100퍼센터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책읽는 방(국외)




"이봐, 다시 한 번만 시험해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정말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날을 때에도 역시 서로가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 알겠어?"
(중략)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시험해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된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본문 中

 


그때 나는 개의 이빨 사이에서 찌르레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찌르레기는 이윽고 닭만 한 크기가 되어 마치 작은 기중기처럼 개의 입을 크게 열어젖혔다.
개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개의 입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황급히 버드나무 가지로 찌르레기를 때렸다.
그러나 찌르레기는 여전히 부풀어 올라 이번에는 노인을 벽에다 단단히 밀어 붙였다.

- '도서관 기담' 본문 中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참 긴 제목의 하루키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이라해도 이렇게 짧아도 되는 것인가..할 정도의 느낌이 든다.
하루키 스스로도 '짧은 소설과 같은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다소 길다고 느낀 '도서관 기담'도 읽을 재미를 느낄 즈음엔 끝이 나버린다.

이 단편소설집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32살즈음에 집필한 소설이다.
18편의 소설 속에도 간간히 '나는 아직 서른 두 살이고..'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그러니 젊은 시절 하루키가 그리운 독자라면 만날 좋은 기회라고 추천하고 싶다.
소설의 진미를 맛 볼 사람이라면 권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내 생각이 맞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즈음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문체에서 녹아나는
독특한 고독의 매력에 빠져 확실하게 독자로 자리매김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의 표현력.. 현실과 거리를 두는 거부감이 왠지 싫지 않았을테고 바로 나의 고독인양 전염되었을 것이다.
일테르면 이런 표현들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나는 스파게티를 계속 삶았다. 그건 마치 무엇인가에 대한 복수 같기도 했다.
배신한 애인이 보내온 낡은 연애편지 다발을 난롯불 속에 집어넣는 고독한 여자처럼 나는
스파게티를 계속 삶았다.
('스파게티의 해에' )


누구에게나 이해할 수 있는 행동만 해야한다는 불편함이 현대인들의 고충이기하다.
그래서 그런 그만의 고독을 인정하고, 이해하다보면 그만의 도시적 미스테리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된다.
또 잠깐 내용을 옮겨본다.



"흡혈귀라는 개념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망토를 쓰거나 마차에 올라타거나,
성에서 산다고 하는 그런 건 싫거든요. 저는 세금도 제대로 내고 있고, 인감 등록도 돼 있어요.
디스코텍 같은 데 가기도 하고, 파친고도 합니다. 이상합니까?

"아니, 별로 이상하진 않아요. 하지만 뭐랄까, 땡-하고 감이 오진 않네요."
"손님은 믿지 않으시는군요?"
"예?"
"내가 흡혈귀라는 걸... 믿지 않으시죠?"
"물론 믿어요. 산이 있다고 생각하면, 산은 있는 거죠"
('택시를 탄 흡혈귀')


그리하여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흡혈귀를 이렇게 등장시켜도 독자들은 항의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니 책의 제목과도 같은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난다'라는 환상적인 설정에 대하여도 그의 독자라면
눈 하나 꿈뻑이지 않고 담담히 그를 만나러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

18편 단편소설 중에서 나는 '도서관 기담'이 가장 인상에 깊었다. 그만의 특유한 문체가 여실히 녹아있다.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에 담겨있어 더 여운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음..삶을 그처럼 고독하게 자문하며 지내봐야겠다.
요즘 쉽게 권태로워지는 나의 일상에 찾아온 하루키에게 감사를..





덧글

  • 영화처럼 2012/03/28 22:05 # 답글

    오늘같은 봄밤에 맥주마시며 읽기 좋은 책 같네요.
    지금 마음은 무겁지만 이상하게 한쪽 구석은 가벼워진 느낌.
    이루말할 수 없는 표현이라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어요.
    써주신 부분만 읽어도 재미있네요.
  • 김정수 2012/03/29 07:56 #

    그렇네요. 맥주라도 한 캔하면서 읽을 것을.. 후회가 됩니다.
    이 책은 그래도 되는 책같았어요. ^^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4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