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미래 탐구 '인문학의 미래' 월터 카우프만.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인문학에서는 특히, 학생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는 교육개혁을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중등 교육과정에서 너무 잘못된 방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은 훌륭한 작품을 외면하고 젊은이들이 관심을 잃은 점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로부터
몇년 후에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어떤 텍스트에 관심이 생겼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몰라
포기해 버린다는 데 있다.

아주 유능하고 다른 많은 것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교수들조차 학생들에게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어내는 독서기술을 읽어버리고 만다면 그때는
텔레비젼도 컴퓨터도 인문학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 中



학문의 최고봉은 '인문학'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학문에 있어 '인문학'은 학문진도의 종착역이자 결실을 맺는 것이라 하겠다.
'인문학의 미래'이란 장엄한 무게감을 느끼는 이 책의 부제는 이렇게 써있다.

'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오늘날 대학교에서는 지식인을 만들기보다 기업이 원하는 전문인을 형성하는 것이 당연시한다.
학생들은 지식의 최고봉인 대학교에서 기업이 원하는 자격증과 스팩을 쌓는게 당연시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저자는 미래를 본 것인가.. 쓸쓸한 기분으로 저자의 채찍질을 느꼈다.

저자 '월터 카우프만'는 인문학자로 철학과 교수등으로 인문학의 경지에 오른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70년대 미국 대학의 인문학 풍토와 교양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인문학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우리는 1970년대 이후 성장발판에 목말라 있었던 터라
미국의 정서적, 문화적, 기업적인 현실을 그대로 흡수한 민족이 아닌가.
그가 걱정하는 '인문학의 미래'는 미국으로만 해석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는 인문학이 제대로 대학에서 정착하지 못한 것을 인문연구학자와 대학의 교수들 탓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인 문제들과 소통하기를 멈춘 인문학자들의 책임 방기라는 것이다.
좀 지루한 면도 있지만 그의 인문학 사랑과 대학의 갈길을 정확히 느낀 시간이 된 것 같아
오랫만에 알차고 힘겨운 독서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이 든다.

자..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는 어떤 것인가..
즉 인문학으로 어떻게 교육개혁을 이룰것인가. 저자는 읽는 것에 기초한다고 말한다.(위 인용문)
또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사람들의 자격또한 얼마나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가..하는 두려움마져
들기도 했다. 책을 제대로 읽게 되면 많은량의 독서가 필요하다. 저자는 변증법적 독서를 요구한다.
아래는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저자의 마음을 비친 내용이다.


그가 한 세미나에서 헤겔에 관해 장황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한 학생이 가까스로 질문을 허락 받고는 헤겔에 관한 책과 '부정의 변증법'에 관한
또 다른 저서도 집필한 바 있는 이 교수가 헤겔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객기를 부렸다.
긴 논쟁이 이어졌고, 마침내 학생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교수의 주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문장으로 교수를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증법의 대가인 교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젊은 친구에게 말했다.

"변증법이란 바로 이처럼 텍스트가 저자의 의도와 모순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카우프만이 30년 전에 분석한 미국의 상황이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을 경계할 시기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인문학이 곧 미래인 것이다.
인문학을 배우려면 위대한 고전을 골고루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결심처럼 굳혀진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교수와 학생들이 똘똘 뭉쳐 소크라테스 변증법과 같이 고전을 통한 비판의식과 사고를
정립하고 사회에 대학생을 내보내야 할 것이다.
제대로된 교육과 올바른 독서와 토론을 통한 젊은이들이 많아질 수록 요즘 가볍게 치고 빠져
걱정되는 젊은이들이 사라지는 희망의 대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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