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북로거] 공부에는 때가 있다? 책읽는 방(청소년,초등)





학문하는 묘리는 다른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라도
물어야 한다. 어린 종이라도 나보다 한 자를 더 안다면 그에게 배울 것이다.
옛날 순임금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는 것에서
임금 노릇을 하는 데 이르기까지 어느 것도 남에게서 배워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는 말하기를 자기가 어려서 미천했기 때문에 상일에 아주 익숙했다고 했으니,
그 역시 밭 갈고 씨를 뿌리며 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따위의 일일 것이다.
비록 순임금이나 공자와 같이 거룩하고 재주 많은 분도 물건을 보고서 기교를 생각해내며
일에 당해서 기구를 만들자면 시일도 부족하고 지혜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임금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도 남에게 묻기를 좋아해서 배우기를
잘한 데 지나지 않는다.


-박지원 '연암집' 북학의서 에서



부처님도 제자들에게 자신은 스승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는 벗일 뿐이라 했다.
즉, 스승이 친구처럼 마음 속의 깊을 것을 나눌 수 없다면 스승이 아니고,
친구 또한 스승처럼 배울 것이 없다면 친구가 아니란 뜻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공부를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잘할 것인가..
정도로 시작했다면 저자의 내공에 부끄러워졌을 것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공부가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공부를 해서 남에게 나누어야 진짜 내것이 된다고 강조한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오로지 입시열풍.. 대학 하나의 목표만으로 준비하는
집단으로 비쳐진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의 억압적 구조는 필수가 되버렸다.
부모들은 과목에 점수 하나라도 올리기 위해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자연스럽게 연달아 교권의 붕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배움의 극치로 달린다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학문의 원칙이 사라졌기에 배움의 열정이라 치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가장 두뇌가 활발히 회전할 10대의 아이들은 왜 공부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일까.
저자는 그것은 먼저 교사가 공부에 미쳐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억압이고 명령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갖은 고생은 하면서 왜 자기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인가. 부모가 앞장서서 공부를 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와 학문적 대화에 뒤쳐져있으면 아이들은 부모를 그저 돈만 대주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와 인생의 길동무로 존경을 받는다면 가장 싸게, 가장 밀도 있게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움과 가르침은 하나다.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공부하자.
그것이 공부의 달인이 되는 길인 것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덧글

  • 이너플라잇 2011/11/06 21:36 # 답글

    존재하는한,, 함께 공부에 미치고 소통한다면,
    부모는 멘토가되는 것이니, 벗이되는 것이지요..
    늘 마음에 나눌것이 있는 소통..
    그것없이 어찌 벗이라 할까요..
  • 김정수 2011/11/07 08:09 #

    맞는 말씀이세요. 소통없는 지식전달은 세대간의 차이만 증명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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