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희 수행평가과제: 화성탐사 우리집 앨범방



정조대왕의 꿈이 있는 화성을 용희와 다녀와서..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용희와 함께 다녀온 '화성탐사' 의 주제로 국사 1학년 수행평가 자료 제출한 내용을 옮겨봅니다.
기록은 후에 자신을 성장시킨 밑거름이 되는 것이며 사고의 기반이 된다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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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수행평가 보고서




Ⅰ 수원 화성에 대하여

1. 수원 화성의 건축 배경

수원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당쟁에 휘말려 뒤주 속에서 비참히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자리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건축되었다. 화성은 임진왜란 때 절실히
필요했던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또한 당쟁이 극심한 당시 정세를 갈아엎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큰 꿈이 담긴 계획적 신도시이기도 한다. 

2. 수원 화성의 모습

화성은 거의 6km에 달하는 성벽을 따라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마흔 개 이상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고,
모든 건축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르다. 성벽은 바깥쪽만 쌓아올리고 안쪽은 지형을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웠다. 건축 재료는 화강석과 벽돌을 함께 사용했고, 이는 목재와도 조화를 이룬다.
또한 화성은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성곽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3. 수원 화성의 가치
수원화성은 당대 학자들의 치밀한 연구로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나다. 그리고 건축 과정 중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거중기, 활차, 녹로 등 근대적
기기를 사용하여 큰 효율을 얻었다. 또한 화성은 축성의 동기에 부모에 대한 효심도 담겨 있어 정신적,
철학적 가치도 지닌다.
또한 축성계획, 재료 정보, 예산 및 임금, 공사일지 등 축성의 전 과정이 빼곡히 기록된「화성성역의궤」는
이에 근거하여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홍수 등을 거치며 일부 파손되고 손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등
건축 역사의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Ⅱ 내가 탐방한 수원 화성의 건축물과 감상

1. 화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으로 1795년(정조 19년)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년) 1월 8일 완성하였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판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서는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있다.
...... 라디오에서 엄마 대학생 때 들었을 법한 노래가 나온다. 창안으로 물끄러미 들어오는 햇살이
내 허벅지를 뜨뜻하게 지진다. 가끔은 이렇게 밖에 나와서 바람도 쐬면 좋은 법이야. 흡족한 표정이
언뜻 백미러로 보아도 알아볼 만큼 그득했는지 아빠께서 말씀하셨다. 국사 수행평가라는 목적으로
출발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나들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화서문 근처에서 내렸다. 나들이 온 사람들,
단체로 현장체험을 온 학생들, 아들과 같이 나와 한국의 문화재를 감상하는 외국인들이 화성에서의
오후를 보내고 있다. 나도 마음이 들떠 화서문까지 오르는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화서문 위의 누(樓)는 간단한 도시락들 들고와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서문의 한 쪽에는 반원형 옹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골목길 같은 옹성의 길은
내 어깨높이 정도로 담이 쌓여 있고 사이사이 구멍이 뚫려 있다. 담 위에 팔을 올려놓고
돌이 머금은 양지바른 기운을 느껴보았다.




2. 수원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성에는 3개의 공심돈이 있는데 현재 남공심돈을 제외한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이 남아 있다.
1796년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하부 치성은 석재로, 상부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공심돈은 화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먼 곳을 관찰할 수 있고 적의 동태를 살피기
쉬운 지형에 세워져 있다. 또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정면과 밑으로
뚫려 있는 구멍으로 통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속이 빈 내부는 전추에 편리한 구조로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를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 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조선시대 성곽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 화서문 옆에 바로 끼고 있는 건축물이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은 위와 같은 기능을
하는 건축물인가 보다. 나는 장안문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3. 북포루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좌우에는 활을 쏘는 구멍도 있다.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5년(정조 19년) 2월 20일 완공하였다.
장안물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의 북서포루와 함께 성벽에 다가서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 장안문까지 가는 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건물이 보였고 그것은 북포루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문틈으로 보니 안은 비워져 있다. 건물 벽면에
열쇠 집어넣는 구멍같이 활 쏘는 구멍을 뚫어놓았다. 구멍이 용의 코에 위치하도록 4개의 구멍마다
4개의 용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알록달록한 용의 입꼬리가 화투에서 찜해놓은 패를 하나씩 쳐낼 때 모습이다.
그런 용의 입을 쳐다보며 콧대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맞서 싸우는 군사들은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4. 북서적대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로서 4대문 중
장안물과 팔달문 양쪽에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서쪽에 위치한 북서적대의 좊이는 성벽과 같은데 밖으로
3개의 현안을 뚫고 벽돌로 쌓은 담장마다 총구멍을 만들었다.
* 홍이포
길이 : 215cm / 구경 : 10cm / 중량 : 1800kg
홍이포는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 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이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 걷다가 아름드리나무가 있어서 그 아래 벤치에서 잠깐 쉬었다. 앉기 전에 멀찍이서 보는 나무와
그늘과 벤치는 그야말로 그림이었는데 막상 가서 앉으니 별 거 없었다. 발을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완전히 다른 경치가 된다는 점을 알았다. 사진작가가 앵글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좀 더 걸으니 이번엔 돌출된 성곽이 나왔다. 여태 본 것과는 달리 치성 위에 목조 건물이 없었다.
대신에 커다랗고 묵직해 보이는 포가 하나 있었다. 포탄을 집어넣으며 포구를 들여다보는 군사,
심지에 불을 붙이는 군사 같은 걸 상상했다.



5.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으로 정문이라 할 수 있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완공하였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장안문 누각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주고 있으며, 서울의 국보 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포하는 역할을 한다.
...... 장안문은 얼핏 보기에도 크다. 이단 기와의 양 어깨가 떡 벌어진 게 화서문과는 다른 기운이 솟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화성 팜플릿을 받았다. 또 여기는 수원 시민을 제외한 사람들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원 시민인 나와 아빠, 엄마는 그 증표인 스티커를 옷에 붙였다.
안에 있는 누각도 훨씬 넓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생들을 이끌고 탐방을 온 단체도 있었고,
외국인도 있었다. 옹성도 화서문보다 번듯한 느낌이다.
장안문에서 내려가자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서 어떤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 맛과 향이 만족스러웠다. 야금야금 먹다 아이스크림이 방울져 녹아내려 옷에 조금 묻었다.
차를 주차한 곳까지는 성곽 안에서 성벽을 올려다보며 돌아갔다.



덧글

  • 시릴르 2011/06/14 23:10 # 답글

    화성탐사라는 제목만 보고 우주에 있는 화성을 생각했습니다(...)역시 겉만 봐서는 속을 알 수 없는거군요

    그나저나 저는 근처에 살면서 남한산성도 안가봤는데 화성 진짜 멋지네요.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 김정수 2011/06/18 10:06 #

    아.. ㅋㅋ 그렇게 읽힐수도 있겠네요.

    수원화성은 그래도 수원시민들이 열심히 지키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기회되면 놀러와보세요.
    외국인들도 많이 올정도로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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