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일 때 생각나는 그 곳(공지영의 지리산 행복 학교) 책읽는 방(국내)






나는 매화꽃 피어난, 찻잔인지 술잔인지를 입술에 대었다. 술과 꽃의 향기가 버무러진,
이루 말할 수 없이 그윽한 향의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처지를 잊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술잔을 입에서 떼는 내 친구들의 얼굴도 그랬다.
그렇지 않다면 한 수다 하는 그들이 그렇게 조용했을 리 없으니까.


..


"내가 왜 시를 못 쓰는 줄 아니? 내 시의 바탕이 슬픔인데 여기 지리산에 온 이후
그게 자꾸 없어져. 그래서 시가 안된다는 거야. 사람들은 말하지. 그럼 기쁜 이야기를 써라.
행복하다고 말이야. 그런데 기쁘고 행복한데 어떤 놈이 시를 쓰겠냐고."



본문 中



몇 년전부터 나온 공지영의 수필집에 자주 등장했던 '지리산 벗들'이 한 곳에 응집된
에세이 집이 나왔다. 드디어 그들의 실체가 밝혀지는 구나.. 책의 제목처럼 그녀가
지리산을 떠오르면 행복해했던 모습이 상상되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 그녀에게 최소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들의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공지영씨의 찬사가 그동안 지나쳤다.

이 책은 단락단락 정말 에세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진 닉명이 있다. 버들치, 낙장불입, 고알피엠, 최도사.. 그들의 친근하면서도
유머스런 이름들이 하나같이 잼있어서 나는 그 이름을 소개하는 글귀를 읽을 땐
깔깔대며 웃기에 정신이 없었다. 공지영씨는 '꽁지작가'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부를수록 즐겁고 애정이 샘솟는다. 의미를 알고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지리산 학교 속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지영씨가 행복의 극찬을 하고 있는 지리산학교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지영이 가슴 깊이 자랑하는 '지리산 학교'의 모습은 그냥 학교도 아니고 '행복학교'다.
너무 행복해져서 '시'가 써지지 않을 정도란다.(인용문 참고)

획일적인 욕망으로만 살아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지치고 의미를 상실한 젊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이 버렸던 도시의 욕망들이 지리산에 올라와 터전을 만들고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에세이를 주도하고 있는 공지영씨는 그들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으로 소임을 마친다.
어떠한 자신의 판단을 산입하지 않고 그들의 모습을 경쟁하지 않는 내려놓은 삶을
그려냄으로써 진짜배기 행복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하게 내비둔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첫 장을 열었었다.
그녀처럼 소탈하고 확실한 언어로 독자들을 이해시키는 작가도 드물것 같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너무 부럽고 그녀의 지리산이 가고싶고 그의 친구들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친구들과 동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샘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50만원 들고 지리산으로 가고 싶은 마음으로 읽고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에세이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형제봉 주막집'을 담아낸다.

정말로 정말로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도시의 삶이 역겨워질 때 오라고..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말라고 주막집 벽에 써있는 시를 옮겨주고 있었다.

난 아직 갈 때가 아닌 것이다.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기 싫어 나는 도시를 떠났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북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셔면
뼈마져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 철쭉꽃 길을 따라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덧글

  • 예지맘♥ 2011/04/03 02:15 # 답글

    매일 마다 한번은 들어와서 글을 읽고 가다가 처음으로 덧글을 씁니다.
    책을 정말로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아이를 핑계로 책한권 읽지 않네요.
    가끔씩 마음이 지칠 때 이 곳에 와 괜찮은 글을 골라 읽고 갑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글을 남겨요 ㅎ
    좋은글 열심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렇게라도 마음에 위로를 하니 참으로 다행이예요
  • 김정수 2011/04/03 10:08 #

    하하..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잠깐 우쭐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애가 아직 어릴땐 방심하면 큰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조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엄마가 하고싶은걸 굳히 포기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말씀처럼 애들 키우다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하더군요.
    안전망(?)이 있는 곳이라면 과감하게 책을 들고 읽기를 주저 마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애를 업고 있을때라던가..(애가 설마 포대기를 푸르고 도망갈리는 없죠? ㅋㅋ)

    자주 들려주시고 좋은 책, 만만한 책 발견하시면 같이 공감 나눠요^^
    편안한 휴일 되시길요~ 예지야~! 엄마랑 잼있게 보내라~




  • 앙큼고양 2011/04/09 04:49 # 답글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살까 말까 한참을 말설였습니다만...^^;;
    보고싶네요.ㅎ
  • 김정수 2011/04/10 11:32 #

    아.. 그러셨어요? 전 작가보고 그냥 골라요.
    음.. 영화 고를때 감독보고 그냥 보는 것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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