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그 남자네 집'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그 남자의 입김만 닿으면 꼭꼭 숨어 있던 비밀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 남자하고 함께 다닌 곳치고 아름답지 않은 데가 있었던가.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청춘이 생략된 인생, 그건 생각만 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한 가운데 있지 않았다.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그와 소원해진 사이의 느낀 휴식감도 절정감 못지않게 소중했다.

긴장 뒤엔 반드시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한번 통과한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적인 몰두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


그러니 내가 취한 행동은 그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본문 中


박완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자 유작인 작품들이 하나씩 출판계에서는 거론되며 목록에 재배치 되고 있다.
나 역시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거의 다 읽었지마는 유작을 기회되면 다시금 재탕하듯 읽기를 결심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첫번째 재독서 선정 도서가 '그 남자네 집'이다.
나는 이 '그 남자네 집'이야말로 그녀의 속마음, 감성, 감정을 가장 잘 담아냈다고 생각이 든다.
어느 작품들보다 가장 박완서할머니 본연의 성격을 잘 알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6년전엔 어떻게 읽었더라.. 드문거리는 기억과 함께 책장을 넘기며 당시의 감상과
현재의 느낌이 비교하며 읽는 어우러진 기분은 예상밖으로 꽤 즐거웠다.
뇌 속의 해마란 녀석은 다음 책장의 기대치를 한껏 더 고무시키듯 발동 시켜주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면 우리 한국사의 궁핍하고..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가장 잘 묘사하는 작가라 생각이 든다.
한국의 발전시기는 언제인가. 폐허 더미에서 발악하듯 일어선 시기 1950년대에서 1970년대다.
그녀는 어쩌면 그렇게도 구석구석 기억을 해내는지..! 판자촌이며 옷차림들이며 먹거리들을 빠짐없이
아니 남김없이 발가벗겨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전쟁후 모습이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한 모습은 당시 살지 않았어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 독자들의 대부분 감상일 것이다.
그녀는 그 현실 속에서 첫사랑을 하는 두 남녀를 등장 시키며 이 소설을 싱싱하게 만들고 있다.

남자라면 모두 강제징집되는 시기에 서울 한 복판에 홀로 남은 젋은 남.녀의 사랑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전후 피폐한 일상 속 일지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찬란하고 가슴 시릴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둘의 감성 풍부했던 첫사랑이라면 정점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아름다운 홍예문이 달린 기품있는 기와집에 살았던 그 남자.
어머니의 외가 쪽 친척이었고 연하라 누구도 연애를 한다고 의심을 하지 않아 맘편히 만났던 그 남자.
시를 멋드러지게 외우고 음악을 사랑했던 그 남자.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아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그 남자.
그리고 머리 속에 벌레가 들어가 실명을 한 어이없게 불행한 그 남자.

하지만 그녀는 평범하고도 자상한 은행원과 결혼한다. 
여자는 그 남자와의 첫사랑을 졸업식에서 우는 졸업생에 비유하며 떠나간다. (인용문)

전쟁 속에서도 꽃은 핀다. 그리고 지기도 한다.
늙어서 죽기도 하지만 자살도 해서 생을 어처구니 없게도 마감 한다.

삶은 어떤 것일까.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하게 만든다.
그 남자의 어머니의 삶은 행복 했을까.. 생각하게 한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정말 당당 했을까.. 미국에서 울면서 전화하는 '춘희'란 여자는 괜찮아 진걸까?
이제 그 남자는 정말 행복하게 살까..

그리고 나의 삶도 질문하게 만든다.  난 지금 잘 살고 있는거니? 




2005년에 읽었던 '그 남자네 집' 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덧글

  • chokey 2011/03/16 00:38 # 답글

    그 남자네 집은 읽으면서 아릿하고 안타깝지만, 뭔지모르게 편안한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이 포스팅을 읽고 나니 다시한번 그 남자네 집이 읽고 싶어지네요 ^^
  • 김정수 2011/03/17 21:05 #

    역시 박완서님 특유의 편안함 때문인지 많은 독자들이 그분의 체취를
    많이들 그리워 하는 것 같습니다.^^
  • 장딸 2011/03/16 11:08 # 답글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이에요. 박완서님만이 할 수 있는 그 시절의 기록... 저도 정수님 글에 공감합니다 ^^
  • 김정수 2011/03/17 21:06 #

    왠지 동행하듯 그 풍경들이 그려지죠? ^^
  • 원화 元華 2011/03/20 22:27 # 답글

    그남자네 집이라면 저희집을 말하는건지...ㅎㅎㅎ 잘지내지요?
  • 김정수 2011/03/21 17:55 #

    ㅎㅎㅎ 잘 지냅니다. 봄날이라 너무 나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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