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일상 얘기들..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


아이들과 식구들 모두 함께한 나들이였다.
남편이 40십이 조금 넘었을 때 였는데,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흰머리가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을 보였는데.. 난 사실 깜짝 놀랐었다.
처음 발견했다는 사실과 남편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실감해서 였을까.
친정엄마, 아버지의 흰머리카락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감에 묘한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마도 봄나들이라는 나른한 행복감과 비교되는 기분이란 생각도 든다.
(남편은 뽑아주려는 나를 한사코 말렸다. 하나를 뽑으면 세 개가 난다는 말과 함께)

힘든 날이면 남편의 코골이가 심하게 들린다.
입을 쩍 벌리고 코를 고는 남편의 머리카락은 이제 셀 수도 없을 정도의 흰머리가 은빛을 발한다.
일이 고단한 날의 남편의 눈은 찡그러져 들어온다.  눈이 제일 피로했던 모양이다.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고 했는데 노안은 눈부터 오나보다.

남편과 술을 마시다 보면 남편은 내가 듣기 싫은 말을 자주 한다.
내가 분명히 먼저 죽을텐데 아이들에게 우리가 뿌리가 되어 줘야 하는데 과연 정수 혼자 할 수 있을까..하는..
그러면 나는 펄쩍뛰며 반박을 한다.

혼자는 절대 못하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아니, 나도 동시에 같은 날짜에 갈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 남편은 못이기는 척, 그럼 삼 일 전에 갈테니 삼 일 뒤에 따라오라고 말하고 마무리 짓는다.
사람이 나약해지면 자꾸 반복을 하게 된다고 했다. 다짐을 받고 싶은 것이다.

남편의 나이도 이제 40십의 반을 훅 넘기고 50십이 가까워진다.
직장생활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목표는 갈수록 높아진다고 고달퍼 한다.
뇌가 굳어지는 것을 점점 실감하고 있는데 조직은 더 힘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세상의 남자들의 어깨가 너무나 무겁다.

내가 더 아껴줘야지.
남편의 주름진 얼굴과 머리카락, 처진 어깨를 보면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짠해져 온다.



덧글

  • 주인공 2011/02/28 14:14 # 답글

    좋은 남편, 좋은 아내네요.^^
  • 김정수 2011/03/01 21:53 #

    ^____^
  • 별사탕 2011/02/28 17:51 # 삭제 답글

    두분의 사랑 감동입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 김정수 2011/03/01 21:53 #

    감동씩이나.. 부끄럽네요^^;
  • runaway 2011/03/01 10:18 # 답글

    마흔 아직 안 된 제 남편... 흰머리 생긴지 벌써 오래됐어요. ^^; 전 남편 흰머리 뽑는게 취민데... 히히. 게다가 코는 어찌나 심하게 고는지요. 그럴 때마다 전 툭툭 치는데... 전 아직 철 안든 부인인가봐요. ^^;;;;;
  • 김정수 2011/03/01 21:54 #

    하하하.. 툭툭 치는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 영화처럼 2011/03/03 10:21 # 답글

    만날 때 부터 머리에 흰머리가 가득했던 남편이었네요.
    그런데 저는 그 흰머리가 엄청 멋지더라구요.
    하지만 가끔 아빠의 머릿결을 닮은 수로의 머리카락 사이에 아주 아주 가끔 흰머리가 보여서
    뽑아줄 때 왜 그리 가슴이 저릿한지 모르겠어요.
    머리카락 하나인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집 남편이나 아저씨나 아내가슴 철렁하는지 모르고 그런 얘기하는게 좀 닮은 듯 하네요.
    하여~
    지금은 제가 한술 더 뜹니다.
    그랬더니 이제 안그러네요.
    한술 더 떠보심이~^^
  • 김정수 2011/03/04 22:40 #

    남자들은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언제어디서나 뇌에 박혀있는 동물인가봐요. ^^
댓글 입력 영역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746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