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Justice)의 딜레마에 빠지다.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들이박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절박한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중략)
상황에 따라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적절한지 찾아내야 한다.
또 어떤 도덕적 딜레마는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를테면 전차 방향을 바꾸지 않거나 옆 사람을 밀지 않으면 몇 사람이 죽을지
확실히 안다고 가정한다.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가설의 예 는 "인부들이 전차를 발견하고 제때 옆으로 피했다면?"같은 우연을 배제하여,
문제가 되는 도덕 원칙만을 따로 떼어내는 그 원칙의 힘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1강. 옮은일 하기 본문 中



사회계약에 목을 맨 사람이 아니라면, 변기 수리에 5만 달러를 약속한 계약은 두 사람이 아무리
자유롭게 동의했다 해도 터무니없이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건은 계약의 도덕적 한계 두 가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동의했다고 해서 그 합의가 동정하다는 보장은 없다.
둘째, 합의만으로는 도덕적 의무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런 계약은 상호 이익은커녕 호혜라는 이상을 조롱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가 그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불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략)
나는 이제까지 합의만으로는 도덕적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쪽으로 치우친 거래는
상호 이익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무리 자발적인 거래라도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이제, 그보다 더 도발적인 주장을 하나 제시하겟다. 합의는 도덕적 의무와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상호 이익이 분명해 보이면, 합의하지 않았더라도 도덕적으로 호혜원칙을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6강. 평등 옹호 본문 中


'Justice'강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인데 그 강의를 책으로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독보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 책은 누구나 일상에서 빠지는 도덕적 딜레마를 시원하게 질문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정의해주고 있다.
첫번째 인용한 본문을 읽다보면 도덕적 딜레마는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샌델교수의 지적 수준에 놀라고 그의 질문에 허우적대는 학생들이
연상되어 즐거운 호기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하지만 방관하듯 피교육자가 되어 막연히 그렇게 쉽게 읽고 덮을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비유되는 사례들이나 원칙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듯 하면서도 난해한 논리들로 엉켜있기 때문이다.

자유사회의 시민은 자라면서 타인에 대한 의무를 배운다. 또한 정의를 배우고 자유시장에 대한 공부를 한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고정관념이 생기게 되며, 그 고정관념들이 다양한 개인간의 권리와
공공의 권리로 자리잡게 되고,또 암묵적인 룰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배운만큼 사회는 공평치 않고 불만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돌입되는 것이다.

그런 자유 민주사회에서 자리잡은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주장들의 영역들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사건들을 우리는 접하게 되는데 과연 그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푸는 것이 '정의'이며 '해답'인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샌델교수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하버드 학생들앞에 대동(?)해서 현재의 문제들을 해답을
그들이라면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도 흥미롭게 전개해준다.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한
토론은 사회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에게 상당한 토론주제라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상대로 현실의 문제들을 철학의 논리를 대비시킨다는 것은 대학에서만이 할 수있는
멋진 비유가 아닐까. 책 뒷편에 적힌 하버드 수강생의 말에 교수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전달된다.

'샌델 교수의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교수님은 나에게 스무 살 풋내기도 위대한 철학자와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마도 학생들은 센델교수의 강의를 듣기위해 철학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공부는 기본으로 갖추고
참여했을 거란 예상을 하게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그리스 철학자의 논법으로 풀어가며
강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단히 짜릿한 경험일 것이다. 철저히 분석하고 따지고 질문에 대비할 테니까.

책을 다 읽고 나는 정의 대해 논의할 수 있는가.. 자문해 봤다.
하지만 정의란 개념은 도덕적 요구와 사회적 구속력을 비교했을 때 그 의미는 정확히 규명하기란 곤란할 것 같았다.
어떤 법적 계약도 규범도 상황적 판단이란 불규칙적인 현실앞에선 무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대사회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요소에 행복이라는 요소를 더해졌을때 정의가 빛을 발하지 않을까.

멋진 강의를 들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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