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주의자의 말도 들어보라구. 책읽는 방(국내)





허무성에게 서울은 탐욕의 썩은 도시였다. 그래서 서울의 황사는 고비나 타클라마칸이
아니라, 정반대방향인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날아온 것처럼, 육개월 전 맨해튼을 뒤덮었던
그 황색 폭풍의 연장인 것처럼 느껴졌다.

..

"자네 말대로 민중은 어리석고 교활해. 작은 충격엔 반항해도 큰 충격에는 벌벌 기는 것이 민중이야.
강한 카리스마에는 복종하게 되어 있어. 인간에겐 원래 복종의 피가 흐르지.
겁 없이 민중을 경멸할 수 있어야 진짜 지도자인 거야.
…이제 민중은 잃어버렸던 신앙을 다시 찾기 시작한 거라고."



본문 中


386세대의 마지막 학번인 '허무성'은 6월 항쟁, 학생운동에 가담했다가 모진 고문 끝에
항쟁에 가담한 동지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고발한다. 시대적 영웅에서 배반자로 돌변한 그는
고문자 '김일강'의 끝없는 박정희에 대한 찬양과 파시즘에 입각한 정치관에 강압되어
그의 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꼭두각시가 되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교수로 임용된다.
그의 고발을 비난할 수 있을까? 소설 속 고문이 단지 소설의 작위가 아님을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세한 고문의 내용들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니 그의 고발로 인한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사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니 그를 너무 욕하지 않기를..

그렇다면 그에게 배신당한 동지들은?
그들은 새로운 민족주의 건설에 실패하고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도 '허무성'과 별반 다를게 없다. 직업만 다를뿐 노숙자로 자초한 폐인친구도 있지만
대부분 운동권 경력을 앞세워 학원강사로, 정치인으로..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물신주의,
배금주의에 지배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현실에 지배당한 그들의 좌절과 현실과의 타협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울분이 치민다.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6월 민주항쟁을 몸으로 겪었던 '허무성'은 이제라도 학생들에게
진솔한 역사를 제대로된 역사를 가르쳐려 노력하지만 아이들에게 역사란 과목은 따분할 뿐이다.
취업전선 대기조인 아이들에게 '역사'란 아무 영양가 없는 학과이고, 이 시대의 허구와
현실의 괴리를 저항할 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청춘의 열정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

소설에서 저항적 그라피티(사람답게 살고싶은 이미지)를 그리는 '오용미'란 학생이 있지만
결국 '허무성'은 그녀를 지켜줄 힘이 없다.
그는 이미 저항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지배 당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소설 속 임에도 '영웅'은 없다고 가차없이 독자들의 희망을 싹뚝 잘라버린다.
한 두명 있는 자각있는 사람들 역시 몰가치한 사람들 무리에 섞이어 아무 가치없이
아무 생각없이 아무 희마없이 살아가고야 만다.
저자는 옛날 누란 왕국을 집어삼킨 황사바람처럼.. 어쩌면 이대로 가다는 우리들의 무비판적인
소비향략주의나 물신주의가 정신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과감하게 현재를 386세대를 가슴아프게
몰아치듯 비판하는 작가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했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정말이지 우리는 18초 광고에 휘둘려서 어느새 입까지 벌리고 삶을 지배당하고 있다.
메스컴이 유도하는 대로 침을 흘리고 정신을 차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절망적이고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들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1톤 가량의 긍정적인 정보가 필요할 정도로
의식을 바꾸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내버려 두는게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무작정 긍정적인 사람은 상대를 더욱 지치게 한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조건 '다 잘될거야'라는 의식은 이미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치고 생각없이 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만사 재쳐놓고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제일 우선이 바로 역사 바로잡기라 생각했다.
심각한 현재의 해부도를 본 느낌의 책이었다.






덧글

  • 이너플라잇 2010/03/21 22:51 # 답글

    단숨에 포스팅 글을 다 읽었네요...우리에게 끼치는 매스컴의 영향은 의식전체를 지배하고 있는거 같습니다.....어떻게 일인이 아닌, 좀 더 많이, 연대해서 벗어날 수 있을지요...
  • 김정수 2010/03/22 22:15 #

    이제라도 제대로된 비판의식을 가지고 이 현실을 직시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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