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일상 얘기들..




기숙사 가기전 용희와 함께



사람이 잠시 여행을 가더라도 준비할 것이 많은데, 용석이가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한다고 하니
일러둘 것은 왜그리 많고 걱정스러운 마음은 하나둘이 아니다.
사실 집에서 안암동까지 다녀도 무방할지 모르겠으나 남편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대학생은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용석이에게 작게나마 기숙사생활이 사회생활에 앞서서
워밍업을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에서 미친 결론이었다.
갑자기 닥친 자유에 대해 용석이는 어떤 부담감과 각오를 가질까.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20살은 사실 외로운 나이다.
갑자기 자유를 쥐어주고 '왜 못하냐'고 채근한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징병검사증이 날라와 당황케 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이런 시간도 성숙의 단계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추억은 상대적이다.
나에겐 아픔이 상대에겐 성숙의 시간으로..
그래도 나나 남편은 절대로 어머니처럼 속내를 드러내 걱정더미에 앉아있으면 안된다.
나나 남편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언제나 든든한 중심이어야 한다.







음. 그러니까 설날 연휴가 끝나고 이틀 뒤인 2월 17날,
형이 고려대 새내기 배움터라는 걸 2박3일로 다녀왔었어요.
그리고 어제, 형이 거기서 집으로 돌아오고.

새니기 배움터는 말 그대로, 고려대에 입학하기 전에
미리 같은 신입생끼리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선배도 만나서 친해지는 자리라네요.
처음 가기 전엔 거기서 술을 잔뜩 마신다는 것때문에 형이 겁을 잔뜩 집어먹었었는데,
갔다오니까 오히려 더 밝아진듯.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형에 비해 선배님 번호도 많이 따오고.
들리는 말로는 이마가 굉장히 넓은 얼굴로 한번에 인식되었다라더나.
확실히, 손바닥 하나가 들어가고도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면적이
이마라는 이름으로 얼굴에 차지하고 있으면 그렇게 되나 보네요. ㅋㅋ


2박3일동안 계속 밤새듯이 놀고 술마신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주 월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간다네요.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인가? 기숙사에 들어가고.
기숙사에 들어가면 주말마다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형의 지금 표정은. 음. 부담스럽다는 표정. 아주.
고등학생때 종 땡 치면 공부하고 쉬고 밥먹는 생활을 하다가
형 스스로 시간을 짜고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나 봅니다.
이제는 성인이 된거야. 사회인으로서 살게 되는 거라고.
아빠엄마의 목소리 앞에서 형은 어떤 표정으로도 자리잡지 못한 얼굴.

하지만, 얼떨떨한 것은 형만이 아니예요.

저도, 상당히. 형보단 덜하겠지만 그래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언제인가, 형과 제가 노트북에 나란히 앉아서
동방 그랑프리나, 동인지를 보면서 폭소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거기서 본 개그는 아직도 떠올리면 피식 하고 웃을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가서 형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바쁘게 일주일을 보내는 듬직한 대학생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 동방 패러디를 보면서 웃었던 형이 지금은
친구랑 같이 술게임을 하면서 웃고, 또 몰라보게 밝아졌습니다.

솔직히, 저는 형이 대학생이 된다는 게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형을 주말에만 잠깐잠깐 보게 되는 일은 저한텐 조금도 환영할 일이 아니예요.
대자로 뻗어서 자고 다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잠자리는 참을 수 없고,
저 혼자 개그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고 난 뒤 씁쓸함은 감당하기 힘들것만 같네요.

어차피 당면하게 될 일이고, 어찌보면 제가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 형이 대학생이 된다는 게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단지 형의 고려대 입학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만 덩그러니 있을 뿐.


형이 새터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음...교가도 배웠고, 구호도 배웠고, 다양한 술게임도 익히고.
어제는 거기서 외치던 구호를 엄마에게 들려줬었습니다.
저는 신나게 구호를 재연하던 형을 노골적인 무표정으로 쳐다봤습니다.
초점이 없는 무표정.


....네, 어제는 이런 기분이었어요.
형의 대학교 입학을 축하하지 않는 동생이라니! 무슨 소리야?
...뭐, 지금은 좀 괜찮네요. 대학생활을 한껏 즐기고 난뒤의 밝은 형의 모습이
저도 퍽이나 궁금하기도 하고. 못마신다는 술은 어떻게 커버할건지,
대학생활이 어떤지 어깨너머 구경도 하고 싶고.
무엇보다 일단 고려대 들어간 형을 축하해야죠. (합격한 날은 꽤 지났지만)

형 너무 장하다! 꺅!

아무튼, 형은 열심히 1년동안 대학생활을 적응해나갈테고,
저는 형 없이도 계획 세워서 알찬 3학년을 보내려고 노력해가겠네요.
각자의 노선, 바쁘게, 누군가를 생각할 겨를 없이.

아무튼, 모두 잘 될 거라 믿어요. 이번 백호의 해. :D






덧글

  • 2010/03/02 14: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김정수 2010/03/02 23:34 #

    아.. 너무 소중한 경험담.. 감사드려요.
    어떻게 감사한지 모르겠네요..
    잘 지도할께요^^
  • 이너플라잇 2010/03/04 00:54 # 답글

    고려대 입학하는 군요..이제 어른이 된 용석군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 김정수 2010/03/04 09:01 #

    어른이라고 칭하시니까 왜 제가 쑥쓰러운건지.. ㅎㅎ 그렇네요. 어른대접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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