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돌 / 행복하려면 두 개의 불행을 견뎌야 해. 엄마가 뽑은 베스트셀러






남자는 그녀를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겨, 머리채를 쥐고 그녀의 머리를 벽에 갖다 쾅 박는다.
그녀는 쓰러진다. 비명도 못 지르고 울지도 못한다.

"됐어.. 당신 폭발하네!" 그녀의 음성이 빈정대듯이 이런 말을 한다.
"내 인내의 돌이 폭발하네!" 그러더니 외친다.
"알~사브르!" 그리고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알-사부르! 난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됐어."



본문 中


인용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즈음에 내 입은 쩍! 벌어지고야 말았다.
남편이 깨어난 것이 사실이야?
..하는 의구심에서 그녀 스스로 주술로써 자신의 갇친 존재를 깨고(자살한) 해방된 것임을 알고는
허탈감에 책장을 덮지 못한채 '인내의 돌'이 깨진 것을 기뻐해야 할지 속상해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솔직히 혼란 스러웠다.

이 소설은 2008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과 같은 환경인 아프카니스탄의 어느 곳에서
한 여인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흡사 바로 눈 앞의 연극의 보는 듯 생생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총탄에 맞아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빈약한 치료제(물에 설탕과 소금을 배합한 식염수?)지만 정성껏
반복적으로 투입하고 '알라'에게 남편의 회복을 빌지만 남편은 차도가 없다.
결혼 10년동안 정작 살을 맞대고 산지는 3년도 채 안되는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는 그녀만의 비밀을
하나씩 꺼내 풀어 놓는다. 의식을 잃기전에 한번도 그와 제대로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그녀가
남편이 의식을 잃고 나서는 자유롭게 풀어 놓는 처지가 된 것이다.

'생게 사부르(인내의 돌)'는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역자는 친절히 설명해 준다.

'생게 사부르'는 페르시아어로 '인내의 돌' 이라는 뜻으로, 아프가니스탄 신화에서
이 돌은 마법의 힘을 갖추고 있어 고뇌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쏟아놓는 모든 말들을
흡수하다가 일정 한계점에 이르면 탁 깨짐으로써 그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을
해방시킨다고 한다.

즉 그녀에게 있어 '생게 사부르'는 남편이었던 셈.

마지막 그녀의 소름끼치는 멘트.. '당신의 목숨은 내 비밀에 달려 있어'
그리고 환각인지 깨어나는 남편.
그리고 그 참을 수 없는 진실에 그녀의 머리통을 벽에 부셔버리는 괴력의 남편.

그녀는 그녀의 비밀에서 해방되고 자신은 스스로 희생되었으니 행복한 결말을 얻은 것일까.

소설 속에서 나오는 '왕과 왕비와 공주와 사형 집행인'의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했을 때
저자의 의도와 맞아 떨어진다.
행복한 결말을 얻으려면 두 가지 불행이 생겨난다는 말.

그녀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표현이 억압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해방'이라는 행복을 얻었고,
그의 댓가로 자신의 두 딸을 보지 못하는 불행과 더이상 삶을 영위 할 수없는 죽음이란 불행을 택했다.
참 완벽하게 불행한 아프카니스탄 여인의 삶이 고작 '생게 사부르'라는 위로뿐이라니 슬플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 안의 남자들은 행복한 것일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독백 중 한 귀절이 오래 남는다.

"제대로 사랑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거라고."

결국 남자도 여자도 모두 고독하고 소외되고 불행한 것이다.




덧글

  • 혜광 2009/09/28 13:43 # 답글

    어떤 죽음 이든간에 죽음은 모든것에서 자유를 얻지요.그러나 살아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구요.
  • 김정수 2009/09/29 09:04 #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장 엄숙해 질때가 '죽음'을 보거나 맞이할때라는데
    그 죽음이 자유감으로 받아드리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과 나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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