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대나무 / 소동파.


대나무를 그릴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니
그 때에 급히 서둘러서 붓을 휘둘러 곧바로 그려내어 보인 것을 따라 잡아야 한다.
마치 토끼가 나옴에 새매가 쏜살같이 내려와 채가듯 해야 할 것이니
조금이라도 늦추면 토끼는 이미 달아나 버릴 것이다.

..


동파가 말했다.
"사물의 안에서 노닐고 사물의 밖에 나와 보지 못하므로 물욕이 덮어 있다.
내가 어디를 가나 즐거움은 물체의 밖에서 노닐기 때문"이라고.

동파가 말했다.
"누구나 즐거운 일은 바라고 괴로운 일은 두려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즐겁거나 괴로운 일이 아직 닥치지 않았을 때의 마음일 뿐이다.
괴롭거나 즐거운 일이 이미 닥쳐 와 몸으로 겪게 되면 바라고 두려워했던
것을 애초에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인데, 더구나 이미 지나간 뒤엔 다시
무엇이 남겠는가?"

..


군자라면,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잠시 붙일 수는 있지만, 사물에다 자기의 뜻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사물에다 뜻을 붙이는 것은 비록 미물(微物)이라도 족히
즐거움이 될 수 있고, 보물(寶物)이라도 병통이 되기에 부족하지만,
사물에다 뜻을 머무르게 한다면 비록 미물이라도 병통이 되기에 족하고,
보물이라도 즐거움이 되기에 부족하다.


본문 中


소동파 산문집이다.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는 11세기 중국사회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써 타고나 문체로
유명하다. 그의 지식세계는 현대를 사라가는 지식인들에겐 정신적 지주로 남아있다.

딱딱한 글 일색일 것으로 짐작하고 거리를 두었다가 가벼운 두께에 흔들려
출퇴근시간에 흔들리는 차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지루하고 딱딱했다.
그런데, 중반부를 읽을 즈음되니 그가 살던 중국의 시대로 들어가 차츰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쉽게 얻어지는 현재의 지식의 한계가 미안해졌다.

이 책은 그가 진중한 글들을 완성하기전까지 준비작업에 속했던 소품과도 같은
글들로 채워져 있다.그리고 역자가 현대 독자들이 그나마 읽기 어려울까봐
읽기 쉽게 번역해서 나온 책이라고 한다. 두께도 얇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에 꼽으면서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을 못하니 나도 참 어지간한 독자라 부끄러워 진다.

단락마다 그의 생활상이 숨겨져있다. 친구들을 사랑하는 마음, 고독한 생활들,
사물을 보는 관점, 글을 쓰는 방법, 책을 읽는 사고력까지.
어쩌면 완성된 그의 글보다 작게 다루었지만 그의 일상을 옅본 이 책이
나는 더 정감이 느껴진다.




by 김정수 | 2009/05/25 19:57 | 책읽는 방(국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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