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가 준 고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용희는 하루 두 세시간을 피아노에 붙어 있다.
그렇게 치고 나면, 등줄기와 허벅지, 엉덩이가 끈적일 정도로 땀범벅이 되어 있는데,
보는 어미 입장에선 딱하기까지하다.

한 동안 탄막게임(동방영야초) 테마 어레인지 곡에 빠져 악보를 구하고, 또 열심히 치더니만
어느 날, 텔레비젼 드라마에 살짝 간주된 재즈의 매력에 빠져 악보를 사고 열심히 연습했다.
용희의 집중력과 독파하기까지 노력하는 모습은 가히 대단하다.
그동안 만든 작곡들을 몽땅 재즈풍으로 바꿔 우리집 공간을 흐르는 곡들은 흐물흐물 재즈까페가 되어 있었다.
난 솔직히 그전 곡들이 좋아..

"용희야~ 그전에 곡들은 그냥 나두지.."

그러면

"재즈가 얼마나 좋은데요~" 그러면서 형 등짝을 리듬 박스로 원, 투, 원투쓰리포~ 이러면서 치기까지 했다.

"어.. 그래 알았어. 니 맘대로 하세요."

ㅡ.ㅡ;;

그랬는데, 지난 7월말 서태지 8집 음반이 나온뒤로 완전히 판세가 뒤바뀌었다.
다시 서태지 음악풍으로 바뀐 것.
용희 말로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수가 있다라는 사실이 놀랍단다.
나는 재즈에서 벗어난 것에 기뻐,

'야~ 엄마는 옛날부터 서태지 팬이야' 라고 말해서 나와의 공감대에 한층 두터워지긴 했다.

용희는 음악에도 어떤 고정관념이 박힌듯한 음은 싫어하는데, 서태지 음악들은 같은 음이 4음절을 넘지 않아 좋댄다.
또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가, 그는 중요한 틀만 빼고는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틀에 박힌 리듬이 아닌 창조적이고 진부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건데
흠이라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게, '전 그래서 좋아요!' 라고 말하며 확실한 자기표현을 했다.

아무튼
좋아하는 거야 용희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지났다고 생각했던 사춘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수다쟁이 용희가 우울모드로..@.@)

왜그러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니..
서태지 음악을 듣고 나니 자기가 그동안 작곡했던 곡들이 다 허접하고 쓰레기 같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자꾸 모방하는 자신을 발견해 더 창피하댄다. 나참.
그리곤 대뜸 기타학원에 등록하고 싶다고 말까지. ㅡ.ㅡ;;

이쯤해서 정리해줘야 할 듯 싶어, 용희에게 말해줬다.

"서태지 음악이 매월, 매년 나온게 아닌거 알지?
멋지다고 생각하는 한 곡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졌을지는 네가 작곡해봐서 알거 아니니..
네가 클래식음악이나 재즈 곡들, 게임테마곡을 연주하면서
여러 곡들의 성향을 배웠듯이, 서태지 음악도 자꾸 듣고 영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단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얼굴'이란 얘기알지?
거리감이 있는 존재보다 차라리 너는 서태지란 사람을 큰바위 얼굴로 삼으면 어떻겠니?"

용희가 본 성격대로 회복되기는 다행히 얼마가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랑 대화하길 정말 잘했다고 활짝 웃어 주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아직은 용희에겐 커가면서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할일은 그저,
그 변화를 한순간의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길 바래주고,
그 과정을 묵묵히 뒷받침해주고.. 응원해주고..
노력의 결실을 함께 지켜주는 사람으로 있어 주기만 된다는 것을..


by 김정수 | 2008/10/20 13:51 | 일상 얘기들.. | 트랙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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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 at 2009/01/09 22:44

제목 : 용희, 기타를 배우다.
서태지가 준 고민..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지난 해, 서태지가 음반이 나온 뒤로 용희만의 음악세계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나는 느낀다. 퇴근하고 작은방 근처를 지날때면 갈라지는 변성기 목소리의 용희가 서태지 노래를 심취되어 부르고 있다. 용희는 다 잘하는데 못하는게 딱 두가지 있다. 체육과 노래. 나는 어지간하면 애들 하는대로 내버려 두는 성격인데, 용희가 노래 부를땐 '그만 하지..' 그러면 본인도 히죽거리며 '네......more

Commented by hkmade at 2008/10/20 14:29
그런 시절일수록 일방적인 관념과 사상을 주입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선택하고 나아가기 전까지는 다양한 경험과 균형있게 자전거를 타고 갈수 있는 감각을 심어주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겠지요. 좋은 일상의 모습 잘 보고 갑니다. (별표 꾸욱. ㅎㅎ)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0 16:45
hkmade님.. 고마워요. 도움이 되었어요. 말씀처럼 균형있는 감각을 심어주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10/20 14: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0 16:45
비공개님.. 늘 지켜봐주셔서 감사해요^^
Commented by 귀대협 at 2008/10/20 16:14
여러 모로 아이가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건 그렇고, 용희가 생각보다 듣는 귀가 있군요.

서태지의 장점을 그리도 잘 파악하다니.

그래도 김정수님의 대처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듯 보입니다.

용희의 장래가 기대되네요.

원래 재능이 있더라도 곁에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서 재능이 꽃피는 법이니까요.^^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0 16:46
귀대협님.. 음악의 장점을 빨리 파악하는게 용희의 장점같아요. 좋은 귀감으로 성장하길 어미입장에서 바래본답니다.
지켜봐 주세요^^
Commented by 시골친척집 at 2008/10/20 17:17
자녀에게
자녀의 눈높이로
아이가 수용할수 있는 대화를 하는 정수님
참 부럽습니다

고2아들
농담은 서로 자주 하고 이얘기 저얘기 하지만
정작 진지한 이야기는 못해본거 같아요
엄마수준이 너무 아래라서..-_-;;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1 12:07
아이들과의 대화는 눈높이를 일단 맞추고 들어주는 것이 기본같아요.
그리고 방황하는 제안은 정리해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라 하겠죠.^^

참. 우리 용희는 중학교 1학년이에요.
잠깐 헷갈리신거 같은데 고2는 큰애 용석이랍니다. 히히
Commented by 미도리™ at 2008/10/20 17:52
대화가 있는 가정이라는 것이 제일로 부럽습니다.
우리집은 부모님과의 대화가 거의 없었던지라...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잘 잡혀있는 용희님이 참 부럽네요!
그래서 자신의 음악과 타인의 음악을 비교해 보고 이것저것 고민도 하는...

그리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것이 정말로 부럽습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1 12:07
미도리님.. 음악은 취미라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감성이 풍부해 지거든요.^^
Commented by 미도리™ at 2008/10/21 18:17
네!` 음악은 장르 안가리고 락음악부터 클래식까지 듣고 있구요! ^^
다룰 수 잇는 악기가 없어서 기타를 배워볼까 생각중이랍니다. ^^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1 21:04
미도리님.. 와우~ 대단하시군요.^^
사람이 한가지는 다룰줄 알아야 될 것 같아요. 특기 - 기타치기.. 음.. 근사한데?
Commented by 이너플라잇 at 2008/10/22 12:02
서태지 음악을 듣고, 그런 점을 캐치해 내다니 정말 놀라워요...
서태지도 4년 정도, 여행하고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완성하고, 자신을 키우면서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지금도 너무 멋지지만, 앞으로도 더 성장해서 용희군이 만들, 그 무엇들은, 정말 너무 멋질거예요...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2 17:15
이너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나면 더 정이 가더라고요. 저도 우리 용희의 앞날이 기대된답니다.
(무슨 엄마가 옆집 아줌마같은 소리만 하죠? ㅋㅋ)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8/10/22 12:37
ㅎㅎ 역시 멋진 모자!

무엇이든 많이 접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용희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는게 좋지요.
(간혹 좌절감도 맛보게 될테지만 그 좌절이 용희를 더 크게 만들어 줄 것임이 틀림없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꼭 전해주세요!!! ^^)

그리고 '하늘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말도 있듯이 , 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의 우상을 따라가면서 발견하는 또다른 무언가도 있을테니 용희가 좌절하지말고 열심히 음악활동을 했으면 좋겠네요. ㅎㅎ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2 17:16
다마네기님.. 옳으신 말씀이세요. 여러 장르를 접하는게 중요하다고 얘기해 줬어요. 피아노만 치지말고 드럼도 칠줄 알아야하고.. 기타도 배우라고...^^

어렸을땐 솔직히 모방이 큰 교훈이죠.^^
Commented by 소마 at 2008/10/22 15:12
와.. 제가 마치 용희가 된 기분인데요. 제가 용희였다면 저런 말을 해준 엄마가 정말 좋았을꺼 같아요. ^^ 내가 뭘해도 믿음직한 우리 엄마라는~! ^^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2 17:16
소마님.. 정말요? ^^ 감사합니다. 믿음직한 엄마가 되겠슴돠~
Commented by 와니혀니 at 2008/10/24 08:00
용희 멋져요!!! ^^

사실 저나이때쯤되면 대부분 부모님과의 대화자체를 거부하며
매우 까칠해지던데....

용희님 아드님들은 참 바르고,믿음직스러워요!!!

이게 다 넘 현명하고 멋진 어머님 덕분이겠죠??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10/24 11:28
과분한 칭찬이세요.. ㅡ.ㅡ;;
어렸을적부터 많은 대화 하시고 애들 시각에서 설명해 주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담이 없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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