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벌레 이야기) / 이청준
영화 포스터 /밀양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걸 빼앗아가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본문 中.


심심찮게 전철 안에서 열혈 기독교인을 만난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사후에 악의 불구덩이 속으로 빠질거라며 불쌍한 듯 사람들을 인도하고자
목청을 다듬는 교인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도 사람들은 외면하고야 만다.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고, 이미 예상한듯 MP3 볼륨을 높이는 사람도 있다.

간신히 멍한 머리를 털고 전철 밖을 나오면,
어스름한 저녁 하늘엔 붉은색 십자가의 은신처인 교회들이 어김없이 곳곳에 보인다.
형형색색 전광판으로 또박또박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니다..'
마치 전철안에서 전도했던 교인을 잊었느냐는 듯 상기시키는 것만 같다.

이뿐이 아니다. 휴일아침 편안한 단잠을 깨우며 벨을 주말마다 꾸준히 누르는 사람들.
현관앞에다 '저희집은 불교 믿어요!' 라고 써붙여도 전혀 아랑곳 않는 전도사들이다.
그들이 한결같이 부르짖는 것.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주님의 품으로 가서 기도하고 영생하라..'
뭐 이런 얘기로 압축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들도 있는데 싸잡아 욕받는 기분이 들었다면,
매번 준비없이 당하는 사람들 입장도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주시길..

이 책은 1985년에 발표된 책으로써 지난 7월말 타계한 고 '이청준(서편제 작가로 유명)'씨의 작품이다.
전도연이 제 60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된 '밀양'의 원작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소재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약간의 변형(영화의 권한 아닌가싶다^^)은 있지만 영화 '밀양'에서 보여준 주된 주제는 같다고 보면 된다.
소설 속 화자는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구원(자식을 유괴살인한 자를 먼저 용서한)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살한 아내를 바라본 남편이다.

읽고나면 많은 독자들은 일암이엄마의 자살에 대해 억울한 기분이 들 것이다.
또한 용서가 과연 무엇인가 싶은 생각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 억울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
아빠가 뼈빠지게(?) 일해 벌어와 차린 밥상머리에서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외칠때
느끼는 아빠들의 이상한 배신감 같은게 아닐까...?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는 인간 스스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니 실수할 수 있고, 죄를 질 수 있다.
1차적으로 그 죄값의 용서는 인간에게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우선시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2차로 밀려난다면 인간은 무기력한 벌레만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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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 2008/08/11 16:41 | 책읽는 방(국내)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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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puRiaE] at 2008/08/12 18:06

제목 : 밀양
결국 종교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평안을 주는거에요 정도의 도덕 교과서 메시지 였습니다. 기독교(영화에서는 개신교를 타겟으로)에서 믿는 그 외국분이 사랑을 주신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느물거리며 바보같이 전도연 씨를 쫓아다니는 송강호 씨의 존재가 전도연 씨를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전 종교가 정치를 위해 태어난 하나의 수단으로 믿고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영화의 메시지는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만은, 영화속에서 나오는 개신교의 모습조차 ......more

Linked at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 : 되.. at 2008/10/11 11:40

... 용희 100일전 사진- 내일이면 칠순을 맞이하시는 친정엄마가 안고 있는 모습^^ 예전에 올려놨던 고.이청준님의 벌레이야기포스팅을 보고, 읽고 싶어하시는 눈치를 보인 다마네기님께 책을 보냈었는데 아마도 그 책 속에 이 사진이 들어가 있었든 모양입니다.^^ 이 사진은 친정집에 갔다가 친정 ... more

Commented by 解明 at 2008/08/11 21:03
내용 외적인 이야기로 영화 <밀양>의 성과를 기회로 단편소설 하나를 단행본으로 시장에 내놓은 출판사의 기회주의 행태는 비판받아야 합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12 07:38
해명님.. 그쵸? 저도 그게 좀 눈쌀찌푸리게 하더군요. 출판사들의 기회주의는 이뿐이 아닌거로 알고있습니다.ㅡ.ㅡ
Commented by 온몸에멍 at 2008/08/11 23:17
영화 꽤 인상깊게 봤음 ㅎ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12 07:39
온몽에멍님.. 전 한참 뒤에서 dvd로 봐서.. 좀 실감이 떨어지긴 하더군요. 전도연은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란 생각이 들어요.^^ (송강호케릭터는...ㅋ 정말 영화감독의 발상..기발하지 않나요? ^^)
Commented by 혜광 at 2008/08/12 00:32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12 07:39
혜광님.. 나무아미타불..ㅋ (죄송)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8/08/12 12:31
항상 제가 읽고 싶은 책들을, 혹은 읽다가 만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읽어야 할)책들을 먼저 보시고 얘기해주시는 정수님 ~~
영화 <밀양>을 힘겹게 보고난 뒤, '벌레 이야기'를 꼭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못읽고 있어요.
영화만으로도 넘 아파서 (넘 힘들어서) 원작을 읽을 용기가(힘이)없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완전히, 완벽하게 압도당할까봐 두려웠어요.

어제 <TV, 책을 말하다>에서 '이청준 추모 특집'방송을 했답니다.
작가의 생전 인터뷰, 드러마화 '눈길', 그리고 지인들과 후배 문인들의 회고담까지...

그리웠어요.
그분의 수줍고 여린 미소, 부드러운 음성 모두.
(실제로 뵌적도 없으면서 말이죠. )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12 19:20
다마네기님.. 제가 다마네기님꺼 뺏어 읽는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요? 푸힛^^;;
단편을 책으로 냈기 때문에 두께는 상당히 얇고요. 판화가 최규석씨의 삽화가 영화 이상으로
일암이 엄마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처럼 이청준님의 작고는 가슴아픈 일이예요. 참 순수하신 분이였는데.. ㅡ.ㅡ;; 고인의 명복을 다시한번 빕니다.
Commented by 이너플라잇 at 2008/08/12 16:35
사실, 구원은, 희망은 아주 가까이에,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후미진 곳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기댈 생각조차 없었던, 그 사람의 자리가 아주 뒤늦게 조용히, 자연스레 자릴 잡듯이말입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12 19:21
이너플라잇님.. 소리없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손길서부터 피어나겠죠?^^
자연스러운게 참 좋은건데..
제가 늘 삶의 원칙으로 여기는 바예요..
Commented by tgv at 2008/08/24 22:09
모든것은 생각입니다 그 죄인은 자기함리화를 하는겁니다 자신이 죄를지어놓고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하느님을 믿게되고그걸로서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겁니다 하느님이 용서를 해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하느님을 믿는것도 자기자신을 위해 믿는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안 믿었다면 공포와 두려움 고통이 엄청심했을 겁니다 하느님을 믿는것은 자기자신을 위해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았냐입니다 그가 과연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을까요?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요? 그는 그냥 자기가 용서받았다고 상상하는 것일 뿐입니다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8/25 11:36
tgv님.. 정확히 영화를 해석하셨네요^^ 맞아요.
그 살인자는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글 받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일암이 엄마가 분괴하고 자살까지 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반항일 테고요.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는 것일테고요..
영화화 되면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다시금 접하게 될 듯 하더군요.^^
Commented by 쿨럭 at 2008/09/12 00:54
쿨럭쿨럭....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9/15 18:45
저런! 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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