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찻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수업 끝난 오후의 자장면 냄새 같은 거

내 몸에 들어와서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마구 양푼 같은 내 가슴을 긁어댈 때가 있네
사내도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네

고대광실 구름 같은 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실컷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오면 천하를 때릴 천둥 번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서러워져
소주 한잔 마시러 가네

소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이 저의 감옥인 줄도 모르고
내 몸에 들어와서
나를 뜨겁게 껴안을 때가 있네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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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 2008/05/22 21:39 | 엄마가 읽는 시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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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나무 at 2008/05/25 21:59
아주 하찮은 것이 마음에 들어와 슬프게 할때가 있습니다.
하찮은 것인데..정말 하찮은 것인데
마음에만 들어오면 풍선처럼 커져버리는지..

앙..소주는 못마시고..맥주라도..- -
한잔 마시러 가야겠어요..^^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5/26 08:20
나무님.. 감정의 동물 인간이라 어쩔수가 없는게지요. 그래서 가끔 술을 먹어줘야 한다는.. ㅡ.ㅡ;;
Commented by creamy怜 at 2008/05/27 11:35
하찮은것이 들어와야 맘이 있다는걸 감지하는 우리.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야 손가락이 거기 있다는걸 안다구 하더라구요.^^

술은.. 저도 조만간 한잔.
Commented by 김정수 at 2008/05/27 12:10
creamy怜 님.. 그러게말이예요..^^ 손가락 가시얘기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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