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읽는 방(국외)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래 토마스는 테레사와의 만남이 여섯 개의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생각 때문에 불쾌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의해 좌우될수록 보다 중요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나 않을까?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는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란,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본문 中.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 있는가하면 <뭐지?>하고 의문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 미로에 봉착한 듯
책장을 넘기기 까다로운 소설이 있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이 그랬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각 단락마다 저자의 매력적인 결론에 이끌린다.
그렇다면 나는 저자가 내린 결론을 온전히 이해했느냐.. 그건 아닌 것 같다.

표제로도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제시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글귀를
한참이나 읽고 또 읽었다. 게다가 책의 차례에도 여러번 반복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은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할 의문처럼 걸고 넘어진다.

도덕적 변태성욕자 <토마스>에게 테레사는 동정이고 관능이다.
테레사는 또한 그를 사랑하지만 의부증으로 질투에 휩싸이는 가벼운 존재다.
토마스는 테레사의 질투심과 의부증을 동정하고 미안해 하다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인 시골로 내려가지만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계속 가벼워져가고 있을 때) 정말 우연히 교통사고로 끝이 난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여섯가지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했던 것처럼 우연으로 끝난다. 허무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을 긍정하지 않은 삶은 허무하다.
자기의 힘으로 그 허무를 긍정 해야만 한다.
일회성 인생이지만 순간적 판단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생의 결정은 매순간 어느 지점이건 발생한다는 뜻 같다.

어렵다.
아무튼 나름대로 나의 결론이라면,
우리는 "존재에 대한 확고 부동한 동의"를 전제로 하는.. 때문에(!)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하려는" 키치에 대한 거부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키치>와 같은 것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키치를 거부하고 싶으나 거부할 수 없는,
또는 키치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존재이며,
가볍고 싶으나 무겁고, 무겁고 싶으나 가벼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최소한 저자는 등장인물을 통해 틀의 해체. 정답이 없는 상태. 삶의 진정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정답없이 독자들에게 선택권을 넘겼다고 본다.




덧글

  • D-cat 2006/07/22 22:45 # 답글

    사놓고 못보고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ㅠ.ㅠ
    봐야하는데 봐야하는데 이러고만 있습니다.
  • akachan 2006/07/23 11:45 # 답글

    이것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도 참 괜찮았습니다.
  • navis 2006/07/23 12:45 # 답글

    두번 봤는데, 두번 다 마지막 한단락을 마저 못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김정수 2006/07/23 16:17 # 답글

    D-cat님.. 그러셨군요. ^^ 읽으시면 감상이 어떠신지 궁금해 집니다. 꼭 올려주세요.

    akachan님..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던데.. 보질 못했답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봤다면 더 좋았을걸..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좀 어려웠거든요.^^;

    navis님.. 그러셨어요? ^^;; 기회되시면 꼭 다 읽어보시길요.
  • inner 2006/07/23 18:00 # 답글

    제 생각에, 밀란쿤데라는 삶의 존재성은 그 모든 것에 있다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가벼움이든 무거움이든, 어느 한 무게로는 삶이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 김정수 2006/07/23 21:03 # 답글

    inner님.. 동전의 양면성처럼 가벼움과 무거움의 가치와 존재감은 말씀처럼 어느 한 무게로만이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좀 어렵지요..^^;
  • 홧트 2006/07/23 22:40 # 답글

    정수님 감상평을 읽고서 제 감상평을 봤는데... 웃음이 나왔어요.
    책이 어려워요.-_-;
  • Ggatal 2006/07/24 11:11 # 답글

    예전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였답니다. 프라하의 봄은 저도 못봤지만, 언젠가 꼭!
    (내친김에 이번 여름에 봐야겠어요)
    삶이 온통 키치로 가득차있다는 쿤데라의 아이디어가 참신하고도 한편 허무하게 여겨졌지만,
    키치면 어때, 그걸 알고도 삶이 재밌고 의미있으면 되는거 아닌가, 하고 막무가내로 생각하기로 했답니다. 저는 지극히 단순한 o형 이어서 그럴지도...
  • 달을향한사다리 2006/07/24 14:09 # 답글

    저도 진짜 좋아하는 책이에요. 스무살, 스물 두살, 스물 일곱살, 스물 아홉살에 읽었던 느낌과 해석이 각각 달랐던 책...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 Tears 2006/07/24 16:56 # 삭제 답글

    참을수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수없는존재//의 가벼움?
  • pass 2006/07/25 16:56 # 답글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이고 좋아하는 책입니다.
    달을향한사다리님의 말처럼 저도 스물두살시절과 스물 네살, 스물 일곱살시절
    모두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아직은 아니겠지만 어느 순간 고전의 반열에 이를 작품이 아닐까싶어요.
    그리고 워터쉽다운의 열한마리 토끼를 보니 웬지 드라마 Lost가 떠오르네요^^;;
    도니다코나 앨리스도 떠오르구요.
    Auster의 빨간 공책은 아직 안읽어봤습니다. 열린 책들에서는 이제 한 작가를 정하면
    거의 전집선을 출판하는 것 같습니다.


  • cornucopia 2006/07/26 20:56 # 답글

    스물 무렵에 읽었던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네요.
    '생은 다른 곳에'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 김정수 2006/07/27 21:52 # 답글

    pass님.. 이 책은 독서시절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감을 느낄 것 같은 책같아요.
    그래서 더욱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한 책이지요..^^

    cornucopia님.. 감사합니다. 다음 책으로 '생은 다른 곳에'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천 감사해요. 읽고서 독서록 올릴테니 감상을 공유했음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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