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의 추억. 일상 얘기들..






요즘은 포차에도 숯불보다 연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언젠부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던 구공탄이 다시금 심심찮게
등장하면서 반가운 마음이 드는건 역시 추억의 힘이다.

퇴근길 역사 끝 살짝 열린 유리문 사이로 그 연탄의 냄새를 포착하면서
유년시절로 달려가게 만드는걸 보면..

연탄을 보면 나는 어김없이 눈내린 빙판길..
셀수도 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계단 끝 달동네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하얗게 변신한 연탄을 반들거리는 눈내린 하얀 계단에
편을 가르듯 가운데에 쫘악 부셔놓고 작은 발로 꾹꾹 눌러 담듯 눌렀었다.
그때 연탄에서 얻는 스트레스 해소는 과히 상상초월의 힘을 줬다.

그땐 번개탄도 나오기 전이라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아야 하는것은
집에 있는 여자들의 의무기도 했던 시기였다.
당시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연탄 아궁이를 살피고
맡벌이로 집에 안계신 엄마를 대신해서 안도의 숨을 쉬곤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집에 돌아와보니 연탄불이 꺼져 있었다.
난 엄마의 화난 모습이 상상이 되자 까마득한 어지럼증마져 일었다.
동생은 옆에서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는 누나가 신기하듯 방관했다.

불연듯 떠오른 생각이란게, 나무에 석유를 부어 불을 붙이면 금방
연탄불을 살릴거란 겁도 없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궁이 바닥에 마른 나무에 석유를 붓고 성냥을 긋자..
시뻘건 불과 시커먼 연기가 곧바로 천장에 붙더니만 삽시간에 불이 번졌다.
그 공포와 놀라움이란!

당시 물도 길러와서 먹는 시절이었지만 당장 불을 꺼야했기 때문에
길러온 그 귀한 물을 몽땅 아궁이에 쳐박아 버렸다.
눈앞에 펼쳐졌던 그 무서운 불길을 향해 용기가 난것은 순전히
엄마의 공포스런 매질(?)의 효과였으리라.

다행히 불은 꺼졌지만, 상황은 아주 악화가 된 후였다.

연탄불도 꺼지고, 아궁이는 폐허가 되었으며, 그 추운날 길러온 물마져
몽땅 없애버린 터였다.

나는 아주 자포자기가 되어 엉엉 동생을 붙잡고
엄마가 올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이미 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는 그 서글픔에
더 울음샘이 멈추지 않았던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그날 이상하게도 날 혼내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방과후 집에 가도 엄마가 없었던 그 부재감는
꺼질까봐 전전긍긍했던 연탄의 존재처럼 내게 늘 외로움을 안겨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4살 터울의 소심한 남동생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으니 얼마나 흐르는 시간들이 까맣게만 느껴졌을까.

엄마는 나와 동생의 그때의 고독을 기억이나 하실까..
연탄을 보면 늘 따라오는 그때의 사건과 외로운 추억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 어깨를 으쓱이게 된다.





덧글

  • 에린지움 2005/11/02 21:02 # 답글

    확실히 부모님이 맡벌이를 하시면 외롭지요.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오때의 그 적막감이 참 싫었어요.
  • 푸른마음 2005/11/02 21:09 # 답글

    정답을 알 수 없으니 미스테리가 맞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걸요?
  • 김정수 2005/11/02 21:25 # 답글

    애린지움님.. 그래서 애들이 감수성이 풍부한 시절만큼은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푸른마음님.. 저도 엄마가 되었으니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에요.. 엄마도 많이 놀라시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었을 테지요..
  • 덧말제이 2005/11/02 21:26 # 답글

    연탄, 번개탄, 부지깽이, 그리고 펌프, 공동화장실... :)
    전 아주 어릴 땐 오히려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그때문에 직접 펌프질을 하거나 물을 길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바로 옆 동네의 펌프, 물 긷는 사람, 공동화장실 그런 거 기억나요. 그 시절에는 사람사는 거 오십보 백보였으니까... :)
    연탄불 갈던 기억 저도 있어요. 청소년기에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기름 보일러로 갈기 전까진 연탄 보일러였거든요. 지하에 불 갈러 내려가는 게 어찌나 싫었는지... 그 매캐한 일산화탄소 냄새...
    중학교 때는 겨울에 거실에 있던 연탄난로의 가스를 온식구 중 혼자만 먹고는 황천길에서 부르는 소리까지 들어봤답니다(정말로 날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니까요. ^^;)
  • 김정수 2005/11/02 21:29 # 답글

    덧말제이님.. @.@ 무섭고 놀랄만한 기억이네요.. 당시 연탄가스로 죽었다는 사람들의 뉴스가 정말 빈번했지요.. 흐유.. 참 까막득한 시절인듯 싶습니다.
  • FAZZ 2005/11/02 21:42 # 답글

    제가 어머님이었다고 해도 혼낼 수 없었을거 같습니다.
    당시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정수님이 측은하고 안타까와 하셨을까요?
    저 글에서 그게 보이는듯 합니다.
  • Eternity 2005/11/02 22:31 # 답글

    이렇게 착하고 이쁜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걸 어머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테니까요^^

    돌이켜보면 저도 그런 기억이 있네요..

    사소한건 막 혼을 내시면서도 정작 엄청 큰 일엔 저보다 더 침착하게

    일처리를 하시고 그제서야 저에게 "아들..믿는다." 라고 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지금 드네요..ㅠㅠ
  • fragrant 2005/11/03 00:22 # 답글

    글쎄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까지도 연탄을 사용하는 집들은 있었던 것 같은데...... 별로 기억에는 없네요.. ㅠ.ㅠ
    학교도 난로에서 온풍기로 바뀌는 과도기에 다녔던지라...... ㅎㅎㅎ
  • 넋두리 2005/11/03 04:33 # 답글

    아..지포구워먹던 생각이..
  • 하늘처럼™ 2005/11/03 08:53 # 답글

    어렸을때.. 연탄 피우는 집에 살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한밤중에 부모님이 막 깨워서..
    일어나보니.. 연탄가스 냄새가 난다고..
    모두 깨운거였죠..
    그날 밤새 아빠는 못주무시고.. 연탄보일러옆을 지키셨다는..

    아웅.. 갑자기 아빠 보고싶네요.. ^^
  • 써니 2005/11/03 08:56 # 답글

    저도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연탄 갈아주는게 일상이었는데,
    그나마 저 어릴 때는 번개탄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런데, 번개탄 때문에 연탄 두 장이 붙어버리면
    그걸 또 분리하는게 만만치 않아요. T.T
  • 뽀스 2005/11/03 08:58 # 답글

    아주 예~~~~~~~~~전에 저희 시골집(전주)에서도 연탄을 사용했어요.
    아부지 어무니가 어찌나 새벽에 고생하시던지.
    새벽되면 불 갈아줘야지... 안꺼지자나요~
  • luvclar 2005/11/03 09:00 # 답글

    엄마의 마음 속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크셨겠죠.
    아.. 눈물이 핑 도네요.
    우리가 지금 우리 아이들 사랑하는 건 우리 부모님 세대와는 감히 비교도 못할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요.. 또다시 눈물 핑~~
  • 불량주부 2005/11/03 10:43 # 답글

    연탄 참 오랜만에 보는것같으네요..저 아주어릴적엔 다~~연탄이였는데...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 가시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정말 이제 겨울인가봐요, 연탄하니까 괜히 따뜻해지네요~~^^
  • 홧트 2005/11/03 10:52 # 답글

    어렸을 때 연탄불 간다고 눈물, 콧물 다 뺐던 기억이 나요.
    불 지키는 일이 쉽지가 않죠. 저도 가끔씩 야단 맞았어요.
    엄마의 부재는 외로움+아픔으로 남는 것 같아요...
  • jasMINe 2005/11/03 10:55 # 답글

    연탄 사진 참 잘찍었다..
    내가 찍은것마냥 흐믓한 기분으로 글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요~
    저도 아침 저녁 연탄 갈던 생각이 나네요.ㅋ
    하루에 한 번만 갈아도 되는 연탄 세장 들어가는 집이 부러웠더랬는데.
    아침에 눈물이 핑~도니 기분도 개운해집니다.^^
  • Gadenia 2005/11/03 13:37 # 답글

    우왕.. 가슴이 찡해지는 글입니다. 연탄불 갈때 구멍맞추느라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행여 숨 못참고 들이마시는 날엔 목이 찢어져나갈것처럼 기침해대고.. ㅜㅜ
    그 미스테리는.. 어머님도 정수님께서 안전하시다는 것이 더 다행이라 여기셔서 그런게 아닐까 감히 추측을.. ^^;
  • 하늘보기 2005/11/03 15:39 # 답글

    ^^ 정감이 가는 연탄사진이에요..
    저도 어릴적엔 연탄을 많이봤었는데..연탄으로 눈사람도 만들고 말이죠..^^
  • 김정수 2005/11/03 21:09 # 답글

    FAZZ님.. 그래요.. 저도 결혼하고 아이낳고서야 그 기분을 이해했어요.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당시의 엄마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으니까요..^^

    Eternity님.. 참 좋으신 부모님이시네요..^^ 그런거 같아요. 저도 아이들을 키우지만 정작 본인이 잘못을 깨닫고 있다면(실패 또는 좌절감이 들은 상태가 확연히 들어나 보인다면) 야단을 칠 필요가 없어요. 이미 본인 스스로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때 지적과 야단을 친다면 삐뚤어 나갈 확률이 높겠죠. 아니면 부모의 의중만 살피는 아이로 전락하거나.. 저도 이제서야 약간씩 느끼니 참 느린 속도지요..훗

    fragrant 님.. 그래요. 나름대로 다 추억이 있을테지요. 그러고보면 저는 참 구시대 속에서 헤메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
  • 김정수 2005/11/03 21:12 # 답글

    넋두리님.. 하하.. 쥐포를 연탄에 구워먹으면 진짜 맛있죠. 까스랜지에 구워먹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바로 그 맛이 떨어져서 일꺼예요.

    하늘처럼™ 님.. 보일러실에서 연탄이 확실히 연소될때까지 기다리신 자상한 아버님이셨네요..^^ 부모와의 정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나봅니다.

    써니님.. 번개탄이 생기면서 불꺼져도 걱정은 안됐는데..진짜 연탄 두장이 떡되게 붙으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도 없었죠. 저도 분리작업(?)하다가 연탄 깨먹은적이 종종 있었답니다. 하하
  • 김정수 2005/11/03 21:15 # 답글

    뽀스님.. 새벽에 일어나서 연탄 가는 것만큼 성가신 일도 없었죠. 드라마에서 가끔 새벽에 부스럭소리 나는 장면은 여지없이 연탄가는 부모님이 등장하는 거잖아요.

    luvclar님.. 제가 감성을 자극했나요? ㅡ.ㅡ 부모님 마음이 상기되셨나봐요. 우리 부모님들 돌아가시기 전에 더욱 효도합시다.

    윤이엄마.. 그러게요. 따스한 것이 그리운걸보니.. 좀있으면 입추니까.. 입추지나면 정말 겨울이란 느낌이 팍팍 오더라고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 김정수 2005/11/03 21:18 # 답글

    홧트님.. 헤헤.. 엄마의 부재는 정말 외로움이 연인처럼 붙어 있는것 같아요. 그 허전함이라니.. ㅡ.ㅡ

    jasMINe 님.. 맞아요. 저도 연탄 석장 들어가는 집이 참 부러웠드랬어요.^^

    Gadenia 님.. 연탄불 갈때면 여지없이 콧속으로 들어오는 일산화탄소의 매케함이 목을 조여오곤 했죠. 이렇게 그 느낌을 공유하는 분들을 보면 왠지 정이 더 갑니다. 하하..^^

    하늘보기님.. 맞아요. 연탄은 훌륭한 눈사람 밑천이었어요.^^
  • Wanderer 2005/11/03 23:27 # 답글

    저희집은 산동네가 아니라 허허벌판의 시골 집이었죠.
    바람이 씽씽~

    애들 걱정에 아마 어머님 속도 연탄처럼 까맣게 타들어가셨을 겁니다.
    게다가 새벽에 불 보러 나가시는 것도 어머님이셨을 거 아니예요?

    저희 어머님도 과거에 맡던 연탄 일산화탄소로 머리가 손상된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그 시절이 그립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연탄 피우는 집은 일단 피합니다.
    일산화탄소때문에. 거기서 만든 음식도... 별로...

    오늘 바람에 은행잎이 날려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비처럼 떨어지는 게 멋있더군요.
    하늘은 파랗고~
    계실 때 잘 해야하는데, 마음만 앞서고 되는 게 하나도 없네요.
  • almaren 2005/11/04 10:35 # 답글

    저희집은 옛날에 시골이라 아궁이에 장작불을 땟습니다. 도시로 이사와서 연탄을 썼지요. 나무불은 처음에 불붙이기도 쉽고 불때면서 다양한 기술을(?) 걸수있지요. ^^ 쓰임새도 아주 많구요.
    연탄에 비해서 유독가스는 별로없는데 연기가 많이나는편이죠. 덜말랐거나 물에 젖은나무는 특히요. 요즘은 산골오지가아니면 카페에서나 장작불을 볼수있더군요.
  • 김정수 2005/11/05 19:31 # 답글

    Wanderer님.. 허허벌판에 집에 있었다니 추위에 더 민감했겠어요.. 저도 다시금 예전의 시절로 돌아갈거냐고 묻는나면 도리질을 칠것 같아요.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추억의 시절은 기억만으로도 힘드니까요..

    almaren님.. 아궁이를 쓰셨군요. 하하..^^ 저도 시집가서 처음으로 아궁이를 봤답니다.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 편지이야기 2005/11/06 21:05 # 답글

    아..웬지 공감..할수는 없지만.뭔가..가슴시린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 둘학맘 2005/11/10 16:49 # 삭제 답글

    울집은 어릴때 연탄장사 했거든요. 다행히(?)언니들이 있어 내 몫은 별로 없었지만. 그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다니던 언니들이 연탄집게로 가파른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탄을 나르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네요.
  • 김정수 2006/01/10 22:56 # 답글

    편지님.. 여기서 세대차이를 느끼는 공감대라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요? ^^ 그래도 요즘은 70년대 드라마가 자주 선보이니 조금 이해는 가실듯 하네요^^

    둘학맘님.. 이제사 꼬리글을 봤습니다.^^;; 죄송해요. 연탄가게를 하셨었군요.. 저도 연탄을 새끼에 꼬아서 두장씩 한손으로 들고 나르고 했답니다, 얼마나 옮기면서 힘들었던지.. ㅡ.ㅡ 그러다 깨면 또 얼마나 혼났는데요.. 흑~ 언니들이 있다니 저도 언니가 둘있어요~ 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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