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프셔도 좋으니 제 곁에 계세요. 우리집 앨범방

작년 친정아버지 팔순 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여든 한 살 촛불을 힘차게 끄시는 친정아버지.



많이 풀린 날씨 탓인지 식구들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 보입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육회를 준비해 갔습니다.





아버지.

제가 아는 아버지는 유식한 분이셨어요.
사춘기시절, 달동네에 살던 우리집 구석자리에서 발견한 책을 찾아 읽던 제 모습을
발견한 아버지의 빛나던 눈동자를 기억해요. 아버지가 읽던 책을 딸이 읽는 모습에서 느껴졌던 따스한 온기도..
아버지는 집안사정으로 졸업은 못하셨지만 유일하게 대학물을 드셨던 분이셨죠.

하지만 평상시에는 꾹 다무신 입술이 절대 열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어요.
엄마의 폭풍같은 생활고를 해결하라는 잔소리는 아버지의 철학과 너무 먼 대화의 부재를 느꼈을테니까요.

먹고 사는게 너무 힘들었던 시절,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현실과 타협을 하셨지만 최후의 자존심마져
파고드는 엄마의 잔소리는 결국 술과 함께 엄마와의 전쟁같은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서지는 살림살이와 찢어질 듯 울고 계시는 엄마의 설움이 어린 마음에도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에 서 있는 기분으로
울면서 두 분을 말리곤 했습니다. 결혼은 서로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까지 술에 젖어 계셨어요.
아버지는 식구들이 그렇게 듣고 싶어했고 권해도 열지 않으셨던 입술이 만취가 되면 열렸습니다.
엄마는 왜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못읽었을까요. 아까운 돈을 또 술에다 쓰는 사람으로 자식들에게 통곡하셨을까요.
술 취한 아버지를 상대하는 사람은 저였습니다.

정수야, 아버지가 힘들구나. 엄마와는 대화가 안된다.

아버지가 당시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도 이상과 현실을 부정하듯
무너졌던 가장의 모습은 저는 용서할 수가 없었어요.
자식들은 모두 엄마의 등 뒤로 이미 숨어 버린 뒤였으니까요. 무능한 아버지였으니까요.

아버지는 뇌경색 판정이 있고나서도 세 번을 더 쓰러지셨습니다.
총명하셨던 아버지와 간단한 대화마져도 끊어지고..

자꾸만 어지럽고, 뇌 속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고, 말도 어둔해졌다고 하십니다.
절대 어색해서 표현하지 못하셨을 사랑표현을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아버지도 엄마의 등 뒤에서 쉬고 계시네요. 진작에 그러셨던지요.

사실 전 아버지께 할 말이 많은 딸이예요.
하지만 그 기회를 제대로 갖지도 못하고 아버지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어집니다.





..



지난 일요일, 친정 아버지 여든 한 살 생신이 있었습니다.
친정엄마가 간단하게 집에서 점심이나 먹자고 하셔서 저는 케익과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육회를 좀 해갔습니다.
정육점에서 질좋은 한우(꾸리살)로 육회를 썰어와서 친정집에 가기 전, 부랴부랴 준비를 했습니다.
육회는 싱싱할때 먹어야 하는데, 친정집이 가까우니 이럴 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육회가 생신상에 올려지자 입꼬리가 올라가셨습니다.
제대로된 대화도 하기 힘든 분이 되버렸지만, 소화만큼은 정상적으로 잘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이후,
자식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만드셨습니다.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곁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친정엄마를 향한 애증의 감정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바라보게 되거든요.

그냥 이렇게 아프셔도 좋으니 오래오래 사셨음 좋겠습니다.






현실은 차갑게, 미래는 따뜻하게. 일상 얘기들..


남편이 28년간 사용한 카시오 계산기



용희가 군대에서 읽을 책을 사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내 책을 함께 결재해 줬더군요.ㅎ









요즘은 헌재시계, 특검시계, 대선시계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작년 10월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국회가 박근혜대통령 탄핵결정을 내린 이후 헌재, 특검, 대선일정이 각자의 시계에
마무리를 해야하는 일정에 맞물려 진행되기 때문이겠죠. 시민들은 어느새 17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로 대다수의 시민들은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던 정치가 이렇게 우리들의 일상에 가깝게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을 겁니다. 이 불행한 사태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각자의 시계가 째깍째깍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남편이 지점이동을 하기전에 가지고 온 업무박스안에서 발견한 카시오계산기가 있었습니다. 건전지로 사용하는
28년된 카시오계산기예요. 처음 입사를 하고 산 계산기를 꾸역꾸역 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쓰고 있었습니다.
손에 익숙하기도 하고 어느새 정이 들어서, 퇴직할때까지 한번 같이 가보겠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이 계산기로 수많은 숫자와의 검증이 있었을 것이고, 확신에 차 결재를 했을 테니까요.

짧게짧게 외박휴가를 나오는 용희가 부대에서 공부할 책을 구입하면서 교보문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제 책을
함께 결재해 줬습니다. 적은 군인월급으로 네 책이나 사지 그랬냐고 했더니 돈 쓸일도 없다고 하면서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ㅎ
부대생활 틈틈히 9월에 학업복귀를 대비해 준비하는 용희가 참으로 기특합니다.

뜻밖에 책선물이 된 허지웅씨의 '나의 친애하는 적'을 몇 장 바로 덜쳐 봤습니다.
'좋은 어른'이란 글 속에 어느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의 팔뚝에 새긴 문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그 뜻이 많이 궁금했었는 데, 책에서 밝혀 주더군요.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68혁명 당시 체 게바라가 한 말로써 유명한 글귀지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되 결코 이루어질 리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그 기반에 두고 살자는 뜻입니다.
현실은 결코 낙천적이지 않으며 무한 긍정주의만으로는 살 수 없도록 냉혹합니다.
까먹지 않으려고 굳히 살 위에 써놓은 것이라고 하네요. 대단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나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삶은 결코 낙관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다.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에서는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필요하다고요.
비관적 현실주의자는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근거없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냉혹한 현실을 일단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있으시죠?_김제동. 책읽는 방(국내)




그리고 저에게 자꾸 "정치하냐?" "정치적인 얘기 그만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저는 사실 그분들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주체인 시민에게 정치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이잖아요. 시민을 무시하는 거죠.

"학생은 공부만 해라, 방송인은 방송만 해라,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만 해라. 정치얘기하지 말고."
(중략)
조선시대에도 이런말은 없었거든요.
원칙이나 기준은 없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술자리에서 얘기하듯이 할 수 있는거 아닐까요?"
강자를 조롱하는 것은 풍자이고, 약자를 조롱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본문 中


김제동씨는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짱가'처럼 나타나 마이크를 들고 속시원하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서있다. 반값 등록금 집회때도, 성주 사드 집회때도, 박근혜대통령 탄핵집회때도 무대에 올랐다.
나는 그런 그의 부지런한 행보를 보면서 미안하면서도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매번 든다.
마음은 있어도 실천에는 항상 망설임이 있는 우리에게 그는 이미 국민대통령이다. 그렇게 변함없이 움직일 수 있는 용기는
어쩌면 능력이 아닐까 생각마져 든다.
그리고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그의 변치않는 용기의 내면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살려는 꾸준한 자기노력과 사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있는 권력앞에서 정의를 부르짖고 시민들의 고통앞에서 용기있게 앞장서서 대변하던 그의
능력 뒤에는 수없이 많은 마음 속 겁쟁이들과의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은 지난 그의 트위터상에 올려졌던 글들이 있기까지 속내가 담겨져 있기도 하고, 그의 과거행적을 통해
오해받고 힘들었던 감정적 충격들을 웃으며 솔직하게 풀어주고 있다.
당신도 그럴 때 있었지 않느냐며.. 나는 당신들보다 조금 더 용기내서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며..

나는 김제동씨 본연의 에세이집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를 더욱 인간미 있게 느껴진 계기가 되었다.
딸만 다섯이 있는 집에 귀하게 얻은 아들. 막내누나가 김제동씨와 꼭 닮았다고 하는데.. (어쩌나 싶은 생각이..ㅋㅋㅋ)
김제동씨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해 줄 것만 같았던 큰매형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어쩌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성애를 모르고 성장한 사람은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사람의 과거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과 같다.
김제동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그의 과거를 한번 들어주는 시간(독서)를 갖아주면 어떨까..

이 에세이집은 트위터에 올려졌던 그의 짧은 글 속에 담겨있던 그의 일상과 과거사들 뿐만 아니라 현 시국에 대한
시민의 권리와 외침도 담겨 있다. 어쩌다보니 그는 진보성향의 연예인으로 분류가 되었는데, 그는 사실 많이 억울해한다.
그는 어느정권이든 정부에 대하여 진정으로 잘하길 바랬으며 법과 원칙을 지켜주길 바라는 기본적인 시민이란 것이다.
사실 나 역시도 보수와 진보를 따지며 편가르기 하듯 현재 시민들이 나뉘는 모양새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민을 대신해서 일하라고 뽑아준 정권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시민들은 분노하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시민들은 권력자들 눈치보지말고 제대로 정치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등지고 시민의 입을 가로막는 일들은 폭력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가볍게 읽으면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내가 원하는 삶, 시민으로써 누려야할 권리, 의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되새기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경기침체가 지속되어 사회 전반적인 활력이 많이 떨어진 것들과 함께 자신에 대하여 의기소침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럴때 읽으면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를 좀 봐주자.'
'나 자신과 너무 드잡이(싸우지)하지 말자.'
'나를 너무 모질게 대하지 말자'

모든 싯점을 나를 사랑하는, 나를 봐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것. 참 많이 와닿았던 글이었다.
너무 힘들면 정신과 상담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한다.
기본에 대한 생각. 그것을 유지하며 사는 것에 대한 용기. 자극이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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