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폭로성 발언일까? 일상 얘기들..




국감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하여 답답하게 답변하는 국무총리 모습



K-스포츠 재단과 미르 재단은 설립 과정과 그리고 운영을 둘러싼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비선 실세'의혹의 중심에 최순실 게이트까지..
재단 설립에 무려 800억이 모금이 기업들로부터 모아졌고, 재단 설립부터 문체부의 승인도 일사천리로 이어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의문점이 더 증폭되는데요.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개별기업에 출연금을 할당해서 했다는 진술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재단 설립 및 구성과 사업에 세세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내용이란 소리고,
제대로된 진상조사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맞다고 봅니다.

관련 기사들을 참고해 보시죠.



"미르.K스포츠 재단 배후로 지목된 최순실을 주목하는 이유"

 



"미르재단 출연 기업인 "안종범이 전경련에 얘기해 기업별 할당"






"k스포츠 이사장은 본인이 이사장 된 줄 몰랐다."






어머니, 드디어 보청기를 맞추다. 일상 얘기들..


대화가 안되는 어머니.. 포스팅과 함께 합니다.



어머니의 난청증세에 대하여 가장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며느리인 나일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일상대화만 가능한 데, 이것도 입모양을 보여드리면서 손동작을 크게 해야 한다.
그러니 진도가 필요한 대화는 에너지가 이만저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머니의 설득이 필요한 내용으로 소통을 시도하다보면 얼굴이 벌게져서 끝난다.
전달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면 이마져도 소용이 없게돼 허탈감이 가중되기 일쑤다.

그동안 보청기 착용에 대하여 지속적인 요청을 드렸음에도 어머니는 지나치다 할정도로 거부감을 강하게 보이셨다.
보청기를 낄 시기가 되면 당장 돌아가실 상태로 인식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어디서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셨을까..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지만 노인들의 강한 집착과 고집은 이길 방도가 없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 타지에 떨어진 자식들이 어머니 상태가 심각함을 인지하면서 진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며느리가 힘들겠다' 라는 말들..ㅜ.ㅜ

나는 다른게 걱정이 되는게 아니다.
난청증세에 이명현상이 겹쳐지면서 어머니가 급속도로 우울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모든 움직임에는 독백을 하시는 데, 그 행동이 사뭇 무섭기까지 하다.
중얼중얼.. 대답을 해야하나 망설이다 여쭤보면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대화의 단조로움이 반복되고 최근 기억은 흐린데 반해, 옛날 기억은 또렷한 증세가 마치 치매로 발전함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병간호나 혹시 닥칠 치매에 대한 사후관리는 누구 몫인가.
명절 후, 남편과 나의 꾸준한 노력과 설득으로 마침내 지난 주말 어머니와 보청기를 맞추러 가기에 이르렀다.
장애등급을 받게되면 건강보험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병원을 세번이상 모시고 가야하는 번거로움과
간신히 설득한 보청기착용에 변심이 생길까 두려워 간김에 바로 맞추고 돌아왔다.
보청기를 끼더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진도는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진심이 통했을까.
보청기를 맞추고 돌아온 오후에 햇살이 들어오는 남쪽베란다 창가에 고추를 흥얼거리시며 다듬고 말리셨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_칼 필레머. 책읽는 방(국외)





"마치 친구처럼 서로 좋아하는 거야. 젊었을 때야 서로에게 푹 빠지다보면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자문하기 힘들지. '이 손과 몸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것들까지 좋아하는 게 확실한가? '
그것이야말로 닳아 없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를 더 성숙하고 깊게 만들지.
하긴 성적인 면도 나름 깊어지기는 해.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중요성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동료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거야.
아이들, 역경, 부모님 등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니까. 또 관심사나 생활양식이 바뀌다보면
그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지. 하지만 부부간의 동반자 의식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관계의 기초야.
그러니까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함께 있는 걸 좋아해야 해. 그러려면 우정이 필요하지."


본문 中





저자 '칼 필레머'교수는 결혼 후 30~70년 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살아온 실제 부부의 700여명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뒤에, 후세에게 들려주고 싶은 삶과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한 지혜를 책으로 담아냈다.

연구 포본으로 삼은 책 속의 소개된 노인 부부들은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거친 삶의 고난을 겪어온
세대로써 외부의 거친 환경에도 백년해로한 부부의 비밀을 담고 있는데, 지루한 담론이 아닌 현재의
20살 청년들 또는 어린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결혼생활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구성을 했기 때문에 기존의
뻔한 내용을 담은 결혼 지침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즉 관계전문가들의 실용적인 조언들인 셈이다.
노인들의 삶 속에서 얻은 지혜를 담은 것이니만큼 인류의 유산으로 삼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수많은 질병과 실패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며 심리적 억압이나 상실감, 또는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 또는 전쟁과 죽음처럼 이내의 극한으로 내몰기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용기와 결단과
의지력을 총 동원한 산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인생 속에서 한 파트너와 해로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결혼한지 어느 새 26년차를 넘기고 있다. 살면서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남편과 지금까지 좋은 관계로
남아있는 이유를 꼽자면 '신뢰'와 '대화'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아이 둘이 만나 서로에 부족함을 보완해주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갔던 것 같다. 갑자기 일대 전환점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제대로된 어른으로
모습을 갖춰나갔다랄까. 책 속에서 이런 내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 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금 남편과 나의 관계는 친구에 가깝다. (인용문 참조)

요즘은 싱글족도 많지만 결혼을 한 뒤에도 아니다 싶으면 이혼을 서슴치 않고 결정을 하는 시대가 되버렸다.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단 뜻이다. 이제는 20년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들마져도 황혼이혼을
부끄럽게 생각치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쿨하게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혼은 삶 속에서
많은 부문 상처로 남아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그러니 결혼은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이나 재혼을 앞 둔 사람들이라면 결혼에 대한 관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결혼은 타협이고 팀플레이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아니다 싶으면 취소하는 계약관계가 아니다.

사실 나도 결혼 10년이 넘도록 견고하고 변하지 않을 시댁문화를 보면서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심축은 우리 부부라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렸고, 또다시 10년을 헌신하고 인내해
보기로 결심을 했다. 시간은 견고했던 많은 문제들을 희석시켰고 지금은 내가 원했던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근래 마음고생이 있었는데 읽으면서 많이 심적으로 해결된 기분이 든다.

결혼 후 생기게 되는 모든 문제들은 '개인'에서 '우리'의 문제로 변한다.
그런데 다양한 문제들을 혼자 끌어안게 되면 해결도 안될 뿐더러 오해로 힘들어 진다.
우리의 문제가 되면 좋은 점은 혼자의 고민이 아닌 둘의 고민이 되어 힘든 것이 줄어들고 기쁜 일은 배가 된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는 필수가 될 수 밖에 없고 해결능력도 둘이기 때문에 지혜로워 진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줬음 좋겠다. 아니 지금 현재 결혼생활이 힘든 사람이 먼저다.








거절의 기술. 일상 얘기들..




호구 되기 싫은 당신을 위한 ‘거절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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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은 '노'를 외치는데 자기도 모르게 '예스'를 말하고 있다면, 거절의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신동준 기자


회사원 강모(42)씨는 20여 년 전 ‘도를 아십니까?’ 묻는 길거리의 이단종교 청년을 따라 본부 사무실까지 끌려간 ‘흑역사’가 있다.

“조상의 음덕이 많은 얼굴”이라며 접근한 청년이 “세상의 이치에 대해 들려줄 테니 잠깐만 시간을 좀 내보라”고 했을 때, 강씨의 내면에선 이단이라는 뚜렷한 두 글자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 저, 그게…, 그럼 잠깐만…”이었다. 한참을 걸어가 도착한 사무실. “세상의 진리를 거저 들을 수 있냐”며 “성의 표시 차원에서 돈을 좀 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그는 “다음에…”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상사의 황당한 지시에도, 부하직원의 어이없는 도발에도 여전히 “좋습니다” “괜찮아”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강씨는 “노(No)”라고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의 습벽을 고치고 싶어한다. 하지만 평생을 일관해온 그의 ‘예스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움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예스와 노의 갈림길에서 자꾸 예스로 발길을 떠민다.

주말 업무를 대신 처리해 달라는 회사 선배에게, 여름이면 해마다 휴가를 함께 가자는 시댁 식구들에게, 갚지도 않는 돈을 수시로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오늘도 마음의 도로를 역주행 하며 ‘좋아요’를 외쳤다. 왜 그랬을까 자책하고 후회하다 보면 어김없이 밀려드는 감정은 ‘나는 호구인가’ 하는 자괴감.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해!’는 그저 독백 처리될 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속 대사는 희대의 명대사가 됐고,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이런 저, 호구인가요?’를 묻는 질문과 ‘님, 호구 맞습니다’ 꾸짖는 댓글이 폭주한다. ‘탈(脫) 호구’가 거의 ‘시대정신’화(化)한 시대다.


우리는 왜 싫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이기적으로 보일까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갈등 상황에 놓일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라고 말하는 250가지 방법’의 저자인 미국 사회심리학자 수전 뉴먼 박사는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추는 피플플리저(people pleaser)들은 외부의 승인으로부터 안정감과 자신감을 추구한다”며 “사람들이 자신을 게으르거나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미움 받거나 왕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싫다’고 거절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두려움은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사실 남을 도와 사랑 받고 싶은 이 착한 마음에는 죄가 없다. 자기보다 타인의 요구를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을 호구로 인식하고 알뜰하게 착취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며 피해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고 선량하기만 한 존재였던가. 타자의 욕구 틀에 자신을 맞추며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예스맨들은 서글프지만 성악설을 수긍하며 탈출의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한국에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 지난해 최대 베스트셀러 서적 ‘미움 받을 용기’를 비롯해 ‘탈호구’ 담론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 것은 그만큼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강압적 사회 환경이 선행한다는 뜻이다. 최근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위즈덤하우스)를 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그 원인으로 "한국의 유교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지적했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라온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문화의 "어른 말은 따라야 한다"라든지 효도 콤플렉스와도 관련이 있죠. 부모에게 ‘노’라고 못하고 자란 아이는, 결국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선생님이나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기 힘들어지고,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때마저도 ‘노’라고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는 아이를 ‘우리 아들/딸 착하지’라는 달콤한 말로 독려하면, 아이는 부모의 승인을 얻기 위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스”를 말하며 점차 이에 중독되는 경향이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 ‘인생수업’에서 “많은 부모가 자녀로부터 거절당하면 불행해하지만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기쁘게 하는 데 초점을 두는 행위는 냉정하게 말해 착취나 학대를 향해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항상 외부의 평가를 갈구하고, 그러다 보면 사고와 행위의 주체가 나 아닌 남이 되며, 결국 자기확산감과 자존감은 결여되고 만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최초의 선한 마음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도 해악을 끼치게 된다. 자신의 한정된 에너지 자원을 착취하고 고갈시키는 과정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분노, 울화, 심지어는 자기혐오에까지 이를 수 있다. 원치 않는 예스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역치를 넘어서면 극단적으로 관계 단절을 감행하며 상대방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땐 작은 것부터 부드럽게 거절해보는 게 좋다.

성장기 내내 ‘아니오’를 말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노’라고 ‘단호박’처럼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처음부터 샘솟지 않는다. 법으로 보장된 휴가에 회의를 잡는 상사에게, 한밤 중 연락해 당장 일을 처리해달라는 고객사에 ‘단호박’으로 대응하는 것이 꼭 좋은 방식도 아니다. 거절의 목적은 거절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내 성질을 보여주거나 그의 논리가 틀렸음을 만방에 선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부드럽게 거절하는 시도를 해보자.

그마저도 어렵다면 즉답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스의 자동발사를 막고, 이게 꼭 해야 할 일인가, 할 시간은 있는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 얼마나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본 후 가부를 결정짓는다. “김 과장님, 제가 웬만하면 회의에 나와보려고 했는데, 몇 년 만에 온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라 도저히 안 될 것 같네요.” 이때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면 큰 도움이 된다. “휴가 전에 자료 준비라든가 다른 방식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혹시 없을까요?” 식으로 덧붙이면 청심환을 먹지 않고도 거절의 언사를 자행할 수 있다.


거절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란 당신.

첫 번째 거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 나의 거절을 두고두고 생각할 만큼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강퍅하게 어떤 부탁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태세로 나올 필요는 없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나이며, 내가 즐거워서 돕는 것일 때는 돕는 게 맞다.


김호 대표는 “거절의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며 “거절하려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상대에게 말하려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거절의 심리적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한 손으로는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히되, 또 한 손으로는 희망과 연대의 손을 내미는 '비폭력의 두 손’. "‘제가 당신(부모님, 선생님, 상사)과 함께 잘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혹은 이렇게 해주십시오’ 말하는 거죠. 단순히 ‘싫어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저를 한 가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상대방에 대한 연대와 희망의 뜻을 함께 밝히는 겁니다.”



‘I 메시지’ 서술법

그가 또 하나 추천하는 거절의 기술은 ‘You 메시지’가 아닌 ‘I 메시지’ 서술법이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하면서(You 메시지)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특정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I 메시지)이다. "왜 그렇게 말을 싸가지 없이 하십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선생님께서 '...(상대의 말을 그대로 인용)'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좀 불편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며, 상대의 말/행동과 그것이 내게 끼치는 영향(감정)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늘 상대방에게만 신경을 쓰고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생각 못하다 보면 이를 놓칠 수 있거든요.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상대방에게 거절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거절의 기술은 외운다고 해서 절로 구사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행하고 있는 친절이 단지 외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자기착취일 뿐이며, 예스의 런닝머신 위에서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절을 추동하는 힘은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아니라 주체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내면의 기쁨이어야 하며, 사고와 행위의 주체는 남이 아니라 언제나 나여야 한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이다.


김호 대표는 친절의 배신과 배려의 부작용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민주주의를 먼저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여 년간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해왔지만,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민주화는 구성원들 각자에게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시에 퇴근하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퇴근시간 즈음에 회의나 회식을 하자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약속은 뒤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걸로 여겨지고요. 오랫동안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실은 무력감을 학습해 온 겁니다.”


그는 “민주주의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갈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매일매일 가정, 학교, 직장의 삶 속에서 민주적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없다면 진정한 정치적 민주화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작은 사례들에서부터 좀 더 민감해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파워를 가진 사람들은 계속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니까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인생 최대의 호연지기를 발휘해 발언한 나의 ‘아니오’는 한국사회가 라이프스타일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다.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는 누구에게나 한정돼 있다. 개인으로서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소비하고, 사회적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성큼 다가갈 수 있는 묘법. 이제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일보/박선영 기자







명절이 싫다. 일상 얘기들..


시골 보름달




삶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힘든 것이다.
어려움에서 나를 구출해내는 것도, 곤경에 빠뜨리는 것도 나 자신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추적해보아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항상 당신을 가로막은 것은 당신이었다. 




 
-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알프레드 아들러) 본문 中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중에 하나가 시골남자라는 점이 있었다.

조그마한 산새가 둘러싼 시골에는 평화로운 자연과 함께 소박하고 넉넉한 마음씨가 있을 것만 같았다.
시골시댁본가에는 어머님이 떠나보낸 자식들을 기다리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기에
타지에서 일터를 잡은 자식들은 길고 지루한 명절차량행렬에도 졸음운전을 참아가며 내려가고,
모인 자식,손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송편을 빚고 며느리들은 부엌에서 제수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고향친구들이 모이고 술과 음식을 가운데 놓고서 즐거운 추억거리와 근황으로 시끌거리며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부벼대며 사는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그리웠다.

하지만,
결혼하고보니 위 내용들은 희망사항이다.

이번 명절을 통해 확실히 알게되었다.
결혼 26년동안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건만 아마도 내가 그리는 명절풍경은 영원히
오지 않을거란 생각에 우울해진다. 아니 슬프다.


..


정의하고 결론짓지 않으면 내가 견디기 힘들어 안되겠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게 주워진 것들에만 희망을 걸기로 했다.
어쩌면 당연한 진리였는데, 이제야 깨닫다니 내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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