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며.. 이글루스 안녕.. 일상 얘기들..



2004년부터 지금까지, 만 19년을 이곳에 글을 썼더군요.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한 이글루스(egloos)를 떠나려니 만감이 교차됩니다.

많은 이웃분들이 일찌감치 떠나시기도 했지만 저는 편안한 이곳이 좋아
텃밭을 가꾸는 노인네처럼 움직이지 않고 채소들을 따서 밥상을 차리며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퇴거 명령이 뜨지 않았다면 아마 자력으론 움직이지 않았을 거예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거해서 가치가 상실된 곳이란 결정이 가장 큰 이유겠지요.
힘없는 세입자만 남은 블로거들은 마땅한 곳을 찾아 짐을 꾸려야 하는거고요.

중년이 되고보니 요즘 저는 인생성적표를 받는 기분이 듭니다.
경쟁이나 자리매김, 순위 같은 구속에서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지금껏 달려온 삶에서 나온 결과치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옮겨야 하는 이유가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하나 처음엔 막막했는데,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이곳 분위기와 유사하면서, 계절로 비유하면 가을같은 곳이랄까요.

네이버로 갈까 하다가 브런치(brunch)로 이사했습니다.
혹시 오랫만에 들리셨다가 주인장 없다고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주소 남겨드려요.

블러그 이웃분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글루스도 고마웠습니다. 수많은 내 과거와 추억이 함께한 공간이었습니다.
아래 주소로 놀러와 주세요.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 brunch'


환갑여행은 당연히 제주도인가 봅니다. 우리집 앨범방




남편이 올해 환갑입니다.
남편 초딩모임여행으로 제주도를 3박4일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된 동무들이니 얼마나 잼있었을까요.
저는 제주도 풍경사진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요..
제주 유채꽃이 환상적입니다.



평온함만이 행복이 아니다_쇼코의 미소. 책읽는 방(국내)




"처음 교실에서 쇼코가 수줍어하는 표정을 봤을 때처럼 나는 쇼코의 웃음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쇼코는 정말 우수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감을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본문 中



소설을 읽고나면 한 사람의 생을 통채로 알아버린 기분이 들어서 좋다.
소설 안에서 움직인 주인공의 행적들, 생각들, 사건들이 모두 집약되어 있어서 평가하기 편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소설처럼 나의 삶의 결론도 쉽게 요약되어 설명하면 얼마나 좋을까.

'쇼코의 미소'란 이 소설도 그렇다. 단편이지만 장편같은 기분이 든 것은 등장하는 두 소녀의
성장과정을 담담히 그리고 충분히 이해될만큼 독자들에게 전달해서 일 것이다.

어느 만남을 가든 처음에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적당히 부담되지 않으며 그들과 섞일 수있는 인사를 하고 나를 받아줄 듯한 사람을 찾아내 접근한다.
이 소설도 그렇게 시작한다. 나의 경우처럼, 누구의 첫 만남처럼.
첫 만남의 인상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그 기억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의 관계는 도대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싶다. 최은영 작가는 우리의 첫인상으로부터
관계의 탐구로 이어짐을 썼다. 이 소설 속 여러 단편 중 대표소설인 '쇼코의 미소'는 그래서 인상깊다.

우리들 어린시절 기억 속에는 노인네같은 친구들이 꼭 있다. 그 애를 바라보는 내 싯점이 이 소설 속
주인공 '소유'의 싯점이다. 쇼코의 첫인상은 노인아이같다.
노인아이는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큰다. 어른들의 칭찬을 받게 됨으로 그 친구는 묘한 우위에 선다.
학교간 자매결연으로 견학 온 쇼코는 일주일간 소유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소유의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된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온 할아버지와는 일본어로, 소유와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할아버지에게 쇼코는 젊은시절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선물같은 친구가 된다.

또 두 소녀에겐 공통점이 있다.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리고 손녀를 속박하는 할아버지.
그녀들은 할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견뎌야 하는 공통점까지 비밀처럼 공유한다.
소유가 노인아이였던 쇼코보다 정신적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사건은 일본으로 찾아가 쇼코의 집에서
재회한 이후다. 할아버지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퓨즈가 나간 쇼코를 본 것이다.
소유는 단적으로 표현한다. "쇼코는 노인이었다."

나이답게 사는 게 이해하기 편하다. 그 나이대의 행동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건을 통해 상대를 다시 관찰하고 나의 사고의 방향을 튼다. 그 계기는 관심이며
오해의 실타래의 끈이 툭 떨어지는 시작이다. 작가는 두 소녀들의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과거의 기록들을 다시금 수정한다.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부모들이 없는 과거의 기록은 완벽하진
않지만 다행히 손녀들로 인해 부족하진 않다. 우리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있다.

소유는 자신의 욕망, 자신의 청춘의 힘겨움이 역겹다 느낀다. 타고난 재능이 없는 것에 절망한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에 억지로 썼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살고 있으며 좌절하고있지 않나.. 적절하고 괴롭고 슬픈 표현이었다.
두 소녀들은 할아버지를 잃고 천천히 어른이 된다. 소유는 성공하고 싶었던 영화일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깨닫고나서야, 쇼코는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온 뒤에서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소설은 잔잔하고 평온한 호수가의 삶만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돌맹이를 던진다. 한 개, 두 개.. 지금 밑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돌맹이들을 기억하라는 듯이.. 당신의 웃음이, 행복이 가치있으려면 고통을 기억하고 딛고 일어선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에는 "쇼코의 미소"란 단편 외에도 여섯 편의 소설이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인내심이 필요하고 사랑이 밑받침 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쇼코의 미소처럼 뒷면에 감춰진 얼굴은 상대가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속아주기도 하면서, 때론 보여주는
모습으로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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